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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Re:밀레니엄바이블 2권 - (13) 깨달음의 길/나를 찾는 길 (끝)

이슬 (새벽이슬, 이슬의꿈,이슬과길) 2011. 4. 5. 1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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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장. 깨달음의 길

지금부터 이 지구의 30년은

너희들 영혼이 나에게 돌아올 준비가 되어있는지 시험하는 중요한 관문이다.

그 때문에 너희에게 많은 시험이 따르게 될 것이다.

너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할 것이고,

그 속에서 크고 작은 깨달음을 통해 나에게 돌아올 것이다.

너희에게 닥친 현실은 환란이나 그 또한 너희 영혼을 위한 것이다.

너희는 그것을 통해 너희가 본래 나의 분신이며

그 어떤 죽임으로도 죽지 않는 부처임을 깨닫게 될 것이다.


두려워하지 마라. 환란이란 연극 무대일 뿐이다.

너희가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너희는 죽지 않는다.

너희의 영혼체인 기몸이 환란의 두려움으로 얼어버리지만 않는다면 너희는 죽지 않는다.

너희가 두려움에 빠지지 않는다면 이 우주에서 가장 아름다운 일들이 일어날 것이다.

의로운 이들이 너희를 보호할 것이니 너희의 사랑이 꽃피어 지구를 덮을 것이다.

너희 안에서 기적이 일어나서 너희의 손과 발로 죽어가는 생명들과 지구를 살릴 것이다.

너희에게 환란은 최고의 기회가 될 것이다.


너희가 이 관문을 넘기 위해서 마음을 키워야 한다.

너희의 사랑의 마음을 키우고 영혼의 몸(기몸)이 강력해지도록 해야 한다.

너희는 그러기 위해 깨달아야 한다.

깨달음만이 너희를 환란의 두려움에 얼지 않도록 지켜줄 수 있다.

깨달음의 사랑만이 너희를 나에게 이끌 수 있다.

나는 너희를 구원하지 않는다.

그건 너희를 사랑하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너희가 나를 믿는다는 이유로 구원을 원한다면 그건 바른 믿음이 아니다.

나는 오직 스스로를 깨달음으로 구원하는 자들을 도울 뿐이다.

나는 너희가 본래 나임을 말함으로써,

너희가 본래 죽음이 없는 무한한 사랑임을 말함으로써 너희를 도울 뿐이다.


너희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 이상을 바라지 마라.

너희는 어리고 약하지 않다.

너희는 너희에게 닥칠 모든 어려움을 이길 만큼 강력하고 위대한 영혼들이다.

너희는 나의 돌봄이 필요한 게 아니라 스스로 자신에 대한 깨달음이 필요하다.

이제 너희들의 진면목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의 영혼이 이전에 이미 큰 깨달음에 들었음을 알게 될 것이다.

너희들이 지구에 오기 전에 너희가 있던 별에서 최고의 깨달음을 얻지 않았다면

지구에 태어날 수 없었다.

그때 이미 너희는 충분히 준비했다.

이제 너희가 해야 할 일은 그 깨달음을 상기하고 실천함으로써

환란의 시험에서 벗어나 나에게 돌아오는 일이다.


너희가 그 깨달음을 상기하기 위해 의로운 일이 필요하다.

깨달음은 지식이 아니다.

그것은 너희의 존재를 더 높은 깨달음의 자리로 확장시키는 것이다.

너희가 이미 이루어낸 깨달음을 상기하려면 영혼의 자리에 서야 한다.

그러기 위해 너희에게 필요한 일이 있다.

너희가 영혼으로서 너희 자신을 자각하고 느끼기 위해 필요한 일이 있다.

그것은 영혼의 온전한 사랑이 어떤 것인지 보이는 것이다.

그것을 위해 너희는 물질의 장벽을 극복하고 의식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해 환란을 선택한 것이다.

이제 너희가 해야 할 일은 예전에 너희가 깨달음의 길을 걸어 올라갔듯이

다시 그 길을 가는 것이다. 너희가 이룰 일은 그것뿐이다.


의로운 길에 들어서면 너희는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기도하고 나의 응답을 구할 것이다.

그 기도가 진실할 때 나의 응답을 얻고 나의 힘을 입을 것이다.

그것이 너희를 나의 자리로, 나의 사랑으로, 나의 깨달음으로 이끌 것이다.

그것은 예전에도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 나에게 기도하고 사랑하지 않으면 온전히 깨달을 수 없다.

나를 모르고 어떻게 본래면목을 보고 우주가 하는 일을 알며

진리를 깨달았다고 말할 수 있겠느냐!

너희가 진심으로 언제나 나와 같이 있기를 원한다면

의로운 일을 통해 나를 깨닫는 길밖에 없다.

너희가 나를 깨달을수록 너희는 완전하게 나를 느끼고 체험할 것이다.  
너희 삶의 매순간이 깨달음으로 가득 차 있다.

너희 삶은 깨달음의 체험을 위해 너희 스스로 선택한 것이다.

깨달음이란 새로운 진실을 만나는 것이다.

그것은 늘 너희 곁에 있지만 너희는 그것을 외면해왔다.

그렇지만 너희가 새로운 진실을 보고자할 때 그것은 오랜 먼지를 털고 너희 안에서 일어난다.


깨달음은 이성적인 판단이 아니다.

그것은 논리적인 계산의 결과가 아니다.

그것은 너희 곁에 있었던 진실의 발견이다.

그것은 너희 삶의 뿌리를 영혼의 더 깊은 자리로 옮기는 것이다.

이루어지는 것을 지켜보라.

깨달음은 단지 사실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다.

사실은 너희에게 도움이 될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그러나 진실을 깨닫는 것은 언제나 너희에게 이로운 것이다.

많이 안다고 깨닫는 것이 아니다.

지식의 일꾼들은 그들의 왕국을 만들지만 곧 허물어진다. 그들의 진실은 곧 허물어진다.

그것은 주춧돌이 잘못된 것을 무시하고 탑을 쌓은 것이다.

그들은 곧 그 탑이 무너지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깨달음은 무너지지 않는다.

깨달음은 너희가 오르는 산 정상의 경관처럼 언제나 그 자리에 있다.

너희가 그 산에 올라 그 자리에 서면 항상 볼 수 있는 것이다.


깨달음의 길은 그렇게 힘든 것이 아니다.

너희가 내게 초점을 맞추고 너희 삶을 통찰하기 시작하면 깨달음은 별을 찾는 것처럼 쉽다.

처음에 하나하나 별을 찾듯이 작은 깨달음을 얻고 그것이 결국은 하나의 별무리였음을

알게 되듯이 작은 깨달음들이 발판이 되어 큰 깨달음을 얻게 될 것이다.

그것이 너희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줄 것이다.

너희는 아무도 가 보지 않은 길을 가게 될 것이다.

너희의 깨달음이 길이 거기에 있음을 보이고 너희는 용기를 내어 그 길을 갈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너희가 오르고자 했던 그 자리에 오를 것이다.

거기에 오를 수 있는 방법을 아는 것, 그것이 깨달음이다.

길을 여는 것이 깨달음이다.

길을 열어서 다른 이들을 그 길로 안내할 수 있는 것들이 깨달음이다.


깨달음의 끝에서 너희는 나를 온전히 보게 될 것이다.

너희는 나를 온전히 받아들여 이 우주의 온전한 삶을 체험할 것이다.

그것은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거대한 체험의 세계이다.

지극히 고요하고 지극히 적막하고 끝이 없이 깊고 영롱하며 더 없이 아름다운 체험이다.

그것은 나를 온전히 아는, 나와 하나 되는 체험이다.  
너희는 영혼의 나무와 같고 너희 한 삶은 그 한 가지와 같다.

너희가 진리를 구하는 것은 그 나뭇가지에 꽃을 피우는 것과 같고

너희가 깨달음을 얻어 가는 것은 그 열매가 익어 가는 것과 같다.

그래서 너희의 깨달음이 완성되면 너희 영혼의 열매도 완성되고

그것은 새로운 영혼의 씨앗이 된다. 이것이 진리의 열매이다.


모든 너희 현실은 너희에게 언제나 최상의 것이다.

그것이 아무리 어렵고 고통스럽고 불안해도 그것은 너희 영혼에게는 최고의 현실이다.

그것은 너희 영혼에게 필요한 현실이며 바로 너희가 원한 현실이다.

그것보다 좋은 현실은 없다.

그렇지만 너희들 대부분은 그 현실을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현실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긍정하라는 것이지 그 현실에 복종하라는 것은 아니다.

너희의 현실은 너희 자신을 창조하는 운동장이다.

그래서 너희 현실을 긍정하면 너희에게 최상의 현실이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회피하면 최악의 현실이 될 수도 있다.

많은 이들은 현실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여 재창조한다.

그것은 아주 즐거운 놀이와 같은 것이다.
너희의 환경이 나쁘다고 투덜댈 필요가 없다.

나를 원망할 필요도 없다. 그런 현실을 선택한 것은 바로 너희들 자신이니까.

너희들이 투덜거림은 자기에 대한 부정일뿐이다.

너희가 이런 태도를 취하는 건 자신에 대한 기억을 잃고 아직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희의 기몸은 새로운 인간으로 태어날 때마다 영혼에 대한 자기 기억을 잃어버린다.

너희가 현실에 대해 불만을 갖거나 무기력해지는 것이 이 망각 때문이다.

그것은 자신이 선택한 현실이 말하는 진실을 상기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런 이들은 자신의 진실을 통찰해야 한다.


자기에 대해 의문을 가져라.

나는 왜 이렇게 살고 있지? 나는 왜 내가 원하는 대로 살지 못하지?

그런 질문이, 자신에 대한 질문이 너희 자신에 대해 깨닫게 할 것이다.

자신을 긍정하지 않아도 좋다. 자신을 보려고 노력해라. 매순간 무엇을 선택하는지.

무엇이 되어도 괜찮다. 매순간 자신을 지켜볼 줄만 알면.

너희가 내리는 모든 선택은 너희들 자신을 비추는 거울이다.


너희의 삶은 너희 영혼이 선택하고 너희 기몸이 선택한 것이다.

너희 영혼은 너희의 은하와 지구를 선택했고

너희 기몸은 너희 부모와 그로부터 비롯될 너희 인생의 환경을 선택해왔다.

그런 결과 너희는 윤회를 통해 많은 체험을 해왔다.

너희 삶은 영혼이 우주에서 자신의 존재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선택한 것이다.

영혼은 너희 삶을 통해 우주의 여러 존재들을 체험하고 자신의 온전함을 실현하려고 한다.

영혼은 너희의 창조와 깨달음을 통해 나에게서 비롯된 자임을 확인하고자 한다.

우주의 모든 존재들이 지금 이 지구에서 거대한 영혼의 완성이 이루어지길 고대하고 있다.

바로 너희들 인간의 삶을 통해서.


너희의 삶은 영적으로 가치 있고 나에게도 중요하다.

그리고 무엇보다 너희 자신에게 의미 있다.

너희의 삶이 없이 우주는 영혼의 목적을 다할 수 없고 기몸은 발전하기 힘들다.

그리고 신인 나 역시 너희를 통해 살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모두 나를 대신해 살고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이 우주의 많은 세계를 창조할 수 없다.

너희가 이 우주에서 체험하는 일이 없다면 나는 이 우주를 체험할 수 없다.

너희가 질문을 던지기 전에는 나는 그 일들을 알 수 없다.

너희 생명들은 많은 아이를 낳지만

그들 모두를 완전한 어른이 될 때까지 돌보는 것은 아니다.

너희는 아이들을 너희의 품에서 내보내고

자연의 치열한 경쟁 속에서 그들 스스로 살아남을 기회를 준다.

이것이 부모로서 자식을 위해 할 수 있는 최선이다.

영혼들은 모두 나의 아이들이지만 나는 그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주는 것뿐이다.

모든 삶에는 기회시련이 있다. 이 둘은 삶을 어렵지만 다양하게 창조하도록 한다.

이런 두 성질이 얽혀서 여러 수준의 삶의 파동을 만들어낸다.

이런 파동이 수없이 이어진 것이 이 우주이다.


사랑은 우주의 본성이다.

우주는 그 몸 자체가 사랑이다.

우주가 사랑하고 포용하지 않는 어떤 것도 우주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우주의 사랑 안에 은하들과 태양과 지구가 존재하듯이 너희는 지구의 사랑 안에 존재한다.

인간의 사랑 역시 마찬가지다.

너희 안에 존재하는 것은 너희 영혼이 포용하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이성에 대한 소유욕을 사랑이라 부르지만 이는 욕구의 표현이지 사랑은 아니다.

그런 애정관계는 인간의 사랑이 아니라 너희 기몸 중의 한 차원의 사랑일 뿐이다.

인간의 사랑은 마음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이다.

영혼의 사랑은 인연이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인연은 이미 영혼의 사랑이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을 받아들여라. 그러면 그것이 너희의 완성을 도우리라.


너희는 결국 나의 알이고 나의 온전함을 실현할 나의 아이들이다.

나는 너희를 지배하지도 심판하지도 않는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상황은 너희의 선택이다.

나의 영광을 위해 일하는 이들 역시 그들 자신을 위한 선택이지 나를 위한 것은 아니다.

나는 이미 충분히 영광되며 충분히 사랑 받고 있다.

내가 원하는 세계는 없다. 내가 원한 것이 있다면 이미 실현되어 있다.

너희는 자신을 위해 선택하는 것이지 나를 위해 선택하는 것은 아니다.

우주를 지을 때 나는 모든 것을 너희 영혼들에게 맡겼다.

그것이 나의 선택이었으니 이제 나는 너희가 선택한 것을 원할 뿐이다.
내가 너희를 대신해서 이 우주를 창조한다면 너희가 보기에는 더 아름다울 것이다.

하지만 그런 우주는 내 안에 이미 존재한다.

너희가 그런 세계를 위해 나의 도구가 되기를 자청하는 것은

이미 지어진 우주를 다시 짓는 것에 불과하다.

너희가 진정 나의 영광을 위한다면 너희 스스로 위대한 영혼임을 보여라.

그것이 너희의 깨달음이며 너희 안의 나를 보는 것이며 너희가 부처에 드는 것이다.

- 말씀 감사합니다. 우리는 이미 과거에 큰 깨달음을 얻은 위대한 영혼들이고, 그 깨달음을 상기하고 당신에게 돌아가기 위해 지금과 같은 현실과 앞으로 올 환란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태어날 때 기몸이 얼어서 망각한 것이지만 바로 우리 영혼들의 선택이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우리의 현실은 최상의 현실이고 그 안에 우리가 상기해야 될 깨달음들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우리 자신을 영혼으로 자각하기 위해 의로운 일들이 필요하고 큰 사랑이 필요하다고 하셨습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너희 앞에 어떤 어려움이 오더라도 그건 너희를 위한 것이다.

너희가 감당할 수 없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그런 일들은 너희 영혼이 선택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죽음을 피할 수 없는 상황 앞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두려움이란 감정의 진실은 무엇일까요?

두려움은 극적인 감정이다.

그것은 앞으로 올 일들을 받아들일 수 없는 기몸의 보호본능이다.

그것은 여러 결로 되어 있다.

그 바깥의 결은 죽음이나 상처받기를 두려워 하지만

그 안쪽의 결은 명예나 자존심이 손상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더 안쪽의 결에서는 자신의 목숨을 버리더라도 자신의 믿음이 훼손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리고 영혼들은 자신의 삶이 의미없이 반복되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들에게는 얼마든지 죽을 수 있지만 똑같은 삶을 여러 번 반복하는 것을 두려워한다.

두려움은 모든 것을 받아들일 때 사라진다.

그게 너희의 부처 자리의 진실이다.

-두려움은 시간이 만드는 거군요. 항상 앞으로 일어날 일들에 대한 두려움이니까요.

그렇다. 그것은 앞으로 올 일들을 미리 예상하고 그가 받아들일 수 없는 일에 저항하는 것이다.

그 일이 일어날 수 있다면 그것은 너희에게 의미있는 일이다.

그 일이 그렇게 이루어지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건 너희를 돕기 위해서다.

너희에게 주어진 마지막 순간까지 포기하지 마라.

그 안에 깨달음의 기회가 있다.

-모든 것들을 지켜볼 수 있다면 그렇게 할 수 있겠죠. 생각을 멈출 수 있다면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대로 받아들일 수 있겠죠.

그것이 너희의 부처이다.

그가 고통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은 모든 것들을 받아들이고 그 진실을 바라볼 뿐이기 때문이다.

-그럼 부처는 시간을 초월해 있는 건가요?

그렇다. 그리고 너희와 같은 시간을 체험하기도 한다.

너희 삶은 부처의 삶의 일부이다. 그는 진실을 바라볼 뿐이고 너희는 두려워한다.

-그럼 선택은 어떻게 하죠? 삶이란 끝없는 선택이고 그 선택을 위해서는 끝없이 의심하고 판단해야 되는데요. 우리의 두려움은 그 속에서 생긴 부산물 같은 감정이잖아요.

그 또한 너희의 두려움이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기 시작하면

굳이 판단하려고 하지 않아도 그 일의 진실을 알게 된다.

-아! 알았어요. 초점이 다른 거군요. 우리는 매순간 손해보지 않으려고 해요. 무엇인가 이익을 보려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는 거죠. 그런데 부처는 진실에 초점을 맞추고 있을 뿐인 거죠. 무엇이 진실인가? 이 선택의 진실은 무엇인가? 그는 지켜보고 체험 속에 자신을 맡기는 거죠. 고통이든, 행복이든.

그렇다. 너희가 두려워하는 그 순간에도 너희의 부처는 그 진실을 바라보고 있다.

-그럼 우리에게는 온전한 눈과 온전하지 않은 눈이 있는 거군요?

그렇다. 그것은 기몸의 여러 층들이 다른 눈을 갖기 때문이다.

-그럼 우리에게는 얼마나 많은 눈이 있나요?

그것은 모든 눈이다. 모든 눈이 너희 것이다. 모든 체험이 너희 것이다.

과거와 미래의 모든 체험이, 전생과 후생의 모든 체험이, 너희와 너희 아닌 모든 체험이

너희 것이다. 그것이 진실의 온전함이다.

 

 

8장. 나를 찾는 길

신과의 대화는 나를 찾는 지름길이고 그 마지막 길이다.

너희 모두는 이미 나와 대화 하고 있다.

너희는 이미 신이고 신으로서 자신을 표현하고 있다.

너희가 만나는 모든 것들 또한 신이다.

그들은 너희와 다른 통로를 가지고, 너희 이웃에 선 신들이다.

그러므로 너희 삶은 너희 내면의 신과 너희 이웃의 신들과의 만남이고 대화이다.

모든 것들을 신으로 대하라.

너희 자신의 신과 대화하듯 너희 밖의 신들과 대화하라.

그들의 신에 집중하고 그들의 신에게 귀 기울여라.

너희가 모두를 신으로서 받아들이면 너희가 곧 나이고 삶이 곧 나와의 대화이다.

그러니 너희 자신과 이웃을 신으로서 사랑하고 신으로서 공경하라.

너희가 그들을 신으로서 받아들일 때 너희가 두려워할 것은 없다.

그것이 최고의 신과의 대화이다.


이 대화는 너희의 큰 나와 작은 나 사이의 대화이다.

그 대화의 상대가 너희 자신이 되건 너희 밖의 여러 이웃들이 되건 그건 모두 나와의 대화이다.

너희가 만나는 모든 것들 중에 나 아닌 것은 하나도 없다.

그들의 겉모습이 무엇이든 그들은 모두 신으로써 너희에게 오고 너희를 돕고 있다.

단지 그들의 신에 집중하라.

그들의 최고의 진실에 집중하라.

너희의 진실과 그들의 진실이 만나게 하라.

거기에 너희 삶의 진실이 있다.

이 대화는 너희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다.

삶이 모두에게 일어나듯 이 대화 역시 모두에게 일어나고 있다.

그 진실이 눈뜨게 하라.

-이것이 밀레니엄 바이블의 마지막 장인가요?

그렇다.

-이 말씀만 가지고는 나를 찾는 길이 무엇인지 모르겠습니다. 이 나는 결국 당신이라면 신으로서 우리 자신을 찾는 길이란 뜻이지만 당장 저부터도 이 책을 위해 당신의 말씀을 기다리다가 지쳐서 자신을 잃고 있습니다. 당신을 찾는 길은 어디에 있습니까?

이 대화에만 매달리면 찾아지는 건가요?

명상하고 자신을 되돌아보고 성찰하면 찾아지는 건가요?

모든 것들을 바라보기만 하면 되는 건가요?

신에게 집중하고 그 메시지에 귀 기울이라지만

신에게 집중하는 게 뭔지 잘 모르는 사람들은 결국 찾을 수 없는 건가요?

그대는 이루어지지 않는다고 화가 나 있지만 이루어질 때를 기다린 것이다.
이 밀레니엄 바이블이 완벽하기를 바라지 마라.

이것은 단지 너희를 내게 안내하고 길을 가리키고 있는 것뿐이다.

모든 길은 너희 안에 있음을 가리키고 있는 것뿐이다.

그것이 지금 내가 말할 수 있는 최선이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일들은 나에게 일어나는 일이다.

너희의 미래를 일깨우기 위해 이 책이 쓰이지만

이를 완전한 안내가 되어야만 한다고 오해하지 마라.
그대는 이 책을 위해 3년을 기다려왔고 지금은 기다림에 지쳤지만

이 대화는 많은 이들에게 길을 열어주고 진실을 일깨울 것이다.

이 대화의 길은 너희를 내게 이끌 것이다.

나를 중심삼고 나에게 물으려하면 나는 답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대가 힘들게 기다려야 했던 것은 그대 안에 두려움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대는 이 대화가 우아하게 이루어지기를 기대하면서부터 이 대화가 힘들어졌다.

내게 완벽한 답을 원하지 마라.

그렇게 하면 너희는 진실을 외면하고 나와 멀어지게 된다.

이제 이 대화를 여기서 마칠 것이다.
이 책이 쓰이는 것은 이와 같은 일들이 너희에게 일어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것이 너희의 진실이다. 신으로서 자신을 믿어라.

이 우주는 그 놀이터다. 우주의 모든 일들은 결국 나를 알기 위한 것이다.

그 지름길이 이 대화이다.

-정말 얼떨결에 끝내는 기분이네요.

정말 끝난 것이다.

-감사합니다.

그대 또한 수고했다.

 

  

밀레니엄 바이블을 마무리하며

이제 조금은 홀가분해진 기분이다.
지난 3년 동안 이 책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면서 끊임없이 신과 대화하고 원고를 수정해왔다. 항상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시간을 보낸 것만은 아니지만 이 일을 끝맺기 전에는 다른 일을 제대로 할 수 없었다. 생계문제는 늘 코앞까지 다가와 있었지만 내게 허락되는 한 이 책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한 달 두 달 보낸 것이 어느덧 3년을 꼬박 채우게 되었다.
불과 한 두 달 전만해도 나는 이 책을 거의 포기하고 있었다. 단지 그때까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것을 내 홈페이지에 올리는 것으로 만족하려 했었다. 나의 대화는 누구나 납득할 수 있을 정도로 완전하지도 않고, 내가 알고 싶은 모든 것을 알 수도 없었다. 내게는 인류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하나로 꿸 만큼의 통찰력도 없고, 점쟁이처럼 미래의 일들을 맞출 능력도 없었다. 그렇다고 신과 대화하는 기회를 빌려 재미있는 주제를 다룰 줄도 몰랐다. 단지 이 책에 필요한 흐름을 쫓을 수 있을 뿐이었다. 신이 내게 허락하는 한…. 그런 속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 이상을 어떻게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을 준비해오면서 나는 수없이 내 자신의 부족함을 느꼈다. 이 책이 이루어지는 데 3년이나 걸린 것은 신의 뜻이었을지는 모르나 내 자신이 그만큼 준비가 덜 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동안 여러 안내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고, 빨리 끝내고 싶은 마음으로 서두르기만 했다. 그래서 숲을 제대로 볼 수가 없었고, 길을 찾기까지 많은 시간이 필요하게 된 것이다. 내가 좀 더 여유가 있었고 서두르지 않았더라면 이 책은 벌써 여러 독자 분들과 만났을 것이다. 이 책이 완성되는데 얼마나 필요하냐고 물을 때마다 신은 3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답했다.(얼마 전에 신은 3년이라는 말을 나의 급한 마음에 3개월이라고 잘못 받아들인 것이라고 한다. 원래 이 책에는 3년이라는 시간이 필요했다고. 내게 그만큼의 준비기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그런데 그런 3개월이 어느덧 12번이나 흘러 3년이 지난 지금에서야 겨우 여러 분들을 찾아가게 되었다. 이 책이 언제 나오느냐고 수없이 독촉해준 여러분들께 다시 한 번 진심으로 사과드린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이 될 지는 처음부터 알고 있었다. 신과의 대화법 원고를 마무리하고 잠시 집에 머물 때였다. 아마 1999년 12월 18일로 기억한다. 그날 나는 신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말씀을 받았다. (이 말씀의 일부는 2부의 말씀2에 들어가 있다.)  

지금부터 밀레니엄 바이블이 쓰일 것이다.
나는 밀레니엄 바이블이 매우 큰 우주의 도움을 받았음을 밝힌다.

지구는 인간들만의 지구가 아니라 우주의 지구이다.

그래서 지구의 새로운 천년을 위해 이 책을 쓰는 것이다.

이 책이 밀레니엄 바이블이 되는 것은 밀레니엄 시대를 나와 함께 하도록

내가 안내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안내는 앞으로 28년 동안만 이루어질 것이다.

그 이후에 지구는 새로운 인류를 위한 별이 될 것이다.

지금 지구의 인류는 나와 하나될 기회를 부여받고 많은 관문을 넘어 나의 정원에 들리라.

이 책은 그를 위한 나의 안내다.
밀레니엄 바이블은 나의 기록이다.

그것은 길을 안내하기 위한 것이다.

나를 선택한다면 그대들 모두 나의 정원에 들리라.

개인만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구원을 받을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많은 의식의 진보가 필요하다.

그것은 인간의식이 아니라 신의 의식으로 진화하는 것이다.

신의식은 나와 같은 마음과 생각을 말하는 것이다.

개인의식에서 신의식에 이르기 위해서는 많은 관념의 벽을 넘어야 한다.

이는 물질세계에서 자라온 너희 인간들에게 매우 힘든 일이다.

그 때문에 나는 너희에게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이다.


이 대화는 너희가 신인 나와 대화할 수 있도록 하며 나의 의식에 이를 수 있는 지름길이다.

나와 대화하기는 쉬운 일이나 나의 의식에 이르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많은 깨달음과 초월이 필요하고 나와 같은 사랑의 자리에 이르러야 하는 일이다.

그것은 그대들이 영혼을 깨닫고 우주를 이해하고 사랑할 때 가능한 일이다.

밀레니엄 바이블은 그것에 필요한 도움을 줄 것이다.

2020년에 그 마지막 편이 쓰이기까지 그대들이 신의식에 들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매우 큰 어려움들이 너희에게 오리라.

그 공포가 너희를 얼려버리기 전에 너희는 나의 의식에 가까워져야 한다.

너희는 나의 의식에 가까워지지 않는 한 그 공포를 벗어날 수 없으리라.

그 맺음은 지구에 큰 변화를 만들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으리라.

나는 그때 너희들 곁에 있으며 너희와 같이 삶과 죽음의 경계를 체험하리라.

나는 언제나 너희와 같이 있으며 너희의 길을 안내하리라.
마기의 몸이 악의 이름으로 바다를 덮으리라.

배암의 후손들이 마당에 들며 매리재(외계에서 오는 오염된 에너지 물질)의 김이 공기를

더럽히리라. 이는 맺음의 시작이리라.

개기일식이 일어나는 날 태양이 두 개가 되며 아주 많은 운석이 지구에 떨어질 것이다.

긴 먼지의 띠가 지구를 덮고 강력한 빛의 태풍이 몰아치리라.

불바다가 이어지며 개기일식이 끝나고 우주인들의 침입을 받으리라.

많은 사람들이 너희 곁에서 죽어갈 것이요,

너희가 이전에 겪어보지 못한 처참한 사건들이 잇따르리라.  

그런 일들이 일어나기 전에 준비해야 한다.

내가 이 대화를 전하는 것은 그 때문이다.

개인의식으로는 이 시기를 견딜 수 없다.

이 책은 그대를 통해 쓰이나 인류를 진심으로 아끼기 위해 쓰인다.


백기가 마기를 걷으리라.

이 대화를 통하지 않고 나와 진정으로 같이 될 수는 없다.

길이 열릴 것이니 이는 너희가 내게 이를 길이니라.

구하는 자는 그 영혼이 구함을 받을 것이다.
어찌 삶과 죽음의 고통이 너희를 괴롭히겠느냐?
지구의 매듭이 지어진다고 두려워할 것은 없다. 모든 일은 위기이자 기회이다.

너희가 맞는 이 시대 또한 그러하다. 너희는 마음으로 그 일들을 맞아야 한다.

마음이 문을 닫지 않도록 해야만 너희 영혼이 일할 수 있다.

너희 영혼은 기몸의 근원이며 너희 마음이란 너희 영혼의 문이다.

영혼은 너희 인간의 근본이며 너희의 마음 안의 더 큰 세계이다.

영혼은 우주의 시공간을 넘나들 수 있고 인간을 초월한다.

지금 이 시대는 너희 영혼에게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너희 영혼이 근원의 고향인 나의 정원으로 돌아올 때이기 때문이다.

밀레니엄 바이블은 너희를 내게 이끄는데 필요한 것이다.

이 책은 그 하나이며 앞으로 10편의 바이블이 나의 이름으로 쓰이리라.

(이것은 이대로 수정 없이 들어가는 게 어떨는지?)

이 말씀을 받고서야 내가 어떤 책을 쓰게 될지 어렴풋하게나마 알 수 있었다. 처음 한 동안은 어떻게 써야 하는 지도 알 수 없었다. 막연히 써야 한다는 생각이었고, 신과의 대화법을 쓸 때처럼 대화를 하면 되겠구나 생각했을 뿐이었다. 그래서 미래에 대해 그냥 생각나는 대로, 내 관심대로 대화하고 정리해갔다. 그런 대화록이 쌓여가긴 했지만 하나의 책으로 묶이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시행착오가 필요했다. 신은 모든 것을 내게 말씀하는 대신 대화를 택했고, 처음부터 모든 것을 이야기하는 대신 내가 그것을 받아들일 준비가 될 때까지 대화하고 기도하고, 새로운 일들을 경험하고 통찰하면서 노력하도록 이끌었다.  
이 책은 내게 새로운 도전이었다. 내게는 약간의 돈과 작은 노트북(이것 역시 이듬해 고장이 나서 새로운 것을 마련해야 했다)과 약간의 옷가지들과 몇 권의 책 외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집에서도 떠나야 될 형편이었다. 아버님께는 신과의 대화법을 쓸 동안만 집에 있게 해 달라고 허락받았던 터였다. 그래서 먼저 직장부터 잡아야 하는 것이 아니냐고 신에게 물어보았지만 신은 이 책이 이루어질 거라고, 흐름에 맡기라고 답할 뿐이었다. 그리고 집을 떠나라고….
나는 다시 한 번 내 자신을 믿기로 했다. 이 책을 완성할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지만 하는 데까지는 해보고 싶었다. 그리고 오늘까지 필요할 때마다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으며 이 책을 마무리할 수 있게 되었다. 나는 그 분들의 도움이 신의 손길임을 느낀다. 그 도움은 정확히 내가 그것들을 필요로 할 때마나 나를 찾아왔기 때문이다. 그 분들께 특별한 감사를 드리고 싶다. (그 분들의 이름을 여기에 한 분 한 분 올리고 싶다. 하지만 그 분들의 영혼을 위해서 여기에 올리지 않는다.)


신과 대화는 항상 할 수 있었지만 이 책에 쓰일 말씀을 항상 들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것들은 자신들이 올 때가 있다는 듯이 내게 많은 시간을 기다리도록 했다. 늘 기다린다는 것은 힘든 일이었다. 어떤 날은 한 말씀이 하루나 이틀 내내 이루어졌다. 그 말씀을 한 자 한 자, 기로 적어가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그런 날은 행복한 날이었다. 때로는 몇 달 동안 이 책과 관련해서는 거의 아무런 말씀도 없을 때도 있었다. 그리고 어떤 때는 내 안의 두려움에 막혀서 거의 한 걸음도 앞으로 내딛을 수가 없을 것 같기도 했다.
대화의 주제는 미리 신과 상의할 때가 많았다. 빨리 이 책을 완성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이었지만 한번 그 흐름을 잃으면 오랫동안 시행착오를 거듭해야 했다. 어떤 때는 신의 긴 말씀이 있은 다음에 이것이 이 책에 들어갈 거냐고 묻기도 했다. 그 속에서 어떤 흐름을 느낄 때나 어떤 방향을 잡으면 그 주제로 새로운 대화를 열어가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이 책의 흐름이 여러 번 바뀌었다.


이 책의 첫 원고는 거의 대화록 수준이었다. 그 중에서 아직까지 남아있는 것은 미래에 대한 대화와 고불교와 환웅에 대한 것뿐이다. 그마저도 많은 부분은 지난 해 새롭게 쓰였다. 지금까지 원고를 완성하기 위해 네 번 이상 큰 틀을 바꾸었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흐름을 잡고 또한 많은 불필요한 대화들, 그 의미가 불명확한 대화들을 가려냈다. 이 과정에서 아름드리 편집부의 조경숙님과 최혜숙님이 많은 수고를 해 주셨다. 그 분들이 여러 번 원고를 읽고 객관적인 시각으로 조언을 해준 것이 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종종 신과의 대화에 관심을 갖는 분들과 만나기도 했다. 출판사를 통해서, 개인적인 친분을 통해서 가끔씩 만나고 싶어하는 이들이 있었다. 그런 만남은 나에게도 큰 활력이 되었다. 누군가가 지켜보고 있다는 것, 다음 책이 나오기를 목이 빠지게 기다리고 있다는 것은 내게 책임감을 갖게 했다.

지난 해 3월에는 공식적인 첫 모임을 갖기도 했다. 그것은 신의 말씀에 따른 것이었다. 그 모임을 통해 많은 사람들과 만났지만 그들을 충분히 돕기에는 나는 많이 부족했다. 그렇지만 그 모임 덕에 홈페이지가 생겼다. 그 모임을 마음으로만 참여한 분이 홈페이지를 만들어주신 것이다. 그 이후로 다달이 모임을 갖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모임은 그렇게 활성화되지 않았다. 모임을 가질 장소도 같이 할 프로그램도 아직 준비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홈페이지가 생김으로써 비로소 이 책이 나올 수 있는 전기가 되었다. 홈페이지가 생기자 혼자서 완성하기보다는 여러 사람들의 반응을 보면서 완성해가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처음에는 이전에 쓴 원고를 거의 그대로 올릴 생각이었다. 그렇지만 여러 사람들이 보는 것이기에 다시 한 번 더 그 방향이 맞는지 묻고 되었고, 지금까지 준비해 온 원고들을 새롭게 보기 되었다. 그 속에서 부족한 것들을 찾아내고 또한 새롭게 필요한 주제들을 찾아내기 시작했다.


미래에 대한 내용은 이미 오래 전에 많은 내용이 이루어져 있었다. 그렇지만 이 연재를 시작하면서 미래를 물질세계, 영적인 세계, 신적인 세계, 마의 전쟁과 천년왕국, 인도자들을 위한 예언 등으로 다시 묶게 되었다. 그것은 신이 그렇게 원한 그대로였다. 그리고 거기에  필요한 대화들을 새롭게 추가하기도 했다. (연재할 때는 이 내용이 1부로 올려졌지만 여러 독자들과 편집인들의 의견을 받아들여 2부와 자리를 바꾸게 되었다.)
잊혀진 지구의 진실들이 하나의 부로 묶인 것은 이때였다. 외계인들과 관련된 인류의 기원은 2년 전에 이루어졌지만 그 앞의 장들은 이번에 처음 쓰인 것이었다. 영적인 지구를 상상한다는 게 어렵지는 않았지만 은하와 은하를 건너뛰는 우주적인 스케일이나 지구와 태양 영혼의 결혼, 그리고 영혼의 지구가 여러 영혼들을 받아들이는 과정은 나의 상상이 아닌 지 되묻곤 했다. 그 전체적인 구도는 분명히 과학적으로 관찰한 사실들과도 어느 정도 부합되는 듯 했지만 그때의 진실을 누가 알겠는가?


외계인들과 관련된 인류의 기원은 그것이 진실인지 수없이 묻고 또 물었다. 그 문제를 다룰 때는 특히 큰 두려움이 일어나기도 했다. ‘여기서 신을 통해 말한 것이 혹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면 어떻게 하지’ 하는 두려움이었다. 그 때문에 신이 말씀하신 다른 진실들까지 부정될까봐 두려웠다. 그것들에 대해서는 다른 체널러들이 말한 게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틀란티스나 레무리아에 대해서도 들은 적이 있지만 여기서 신이 말씀하신 것과는 많은 차이가 있을 것이다. 나는 그것들에 대해서 들은 적이 있지만 신의 말씀과 혼동되지 않기 위해서 일부러 읽지 않았다.
과거에 대한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그것이 진실인지 알 수 있겠는가? 그렇지만 이건 우리 자신의 잊혀진 역사일 수 있고, 신이 이와 같이 말하지 않는다면 알 수 없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리고 그것이 지금 우리가 겪을 일들에 대한 그럴듯한 설명이 될 수 있다고 믿었다.


고대의 현자 환웅과 고불교는 이미 오래 전부터 이 책에 들어갈 내용이라고 들었다. 하지만 이전까지와는 아주 다른 내용이 되었다. 이전에는 환웅의 깨달음이나 천부경이 그의 말씀을 옮긴 것이고, 인도나 중국, 한국의 고대의 지혜가 그로부터 비롯되었다는 정도였다. 그렇지만 여기서 그 내용들은 좀 더 구체화되었고, 그때 어떤 삶을 살았는지, 그들이 어떻게 새로운 대륙으로 가게 되었는지 어렴풋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장을 다루면서 환웅이 나의 전생의 하나였다고 말씀하신 것을 드러내야 한다는 것 때문에 힘들었다. 나는 그 말씀을 듣기 전부터 그에게 끌렸고, 그에게 홍익인간 사상 이상의 뭔가가 있다고 느꼈다. 그러나 그의 깨달음이 필요하다고 해도 그게 꼭 나의 전생이어야 할 이유는 없지 않은가? 그러나 신은 그게 내 전생이기를 밝히기를 원했다. 나는 그것이 나에 대한 자화자찬이 아닌지, 그래서 이 책의 말씀이 왜곡되지나 않을지 되묻곤 했다. 아마 그 환웅이 부처에 들고도 다시 태어날 수 있음을 보이기 위해 나의 전생이라고 밝힌 것인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여전히 나는 부담스럽다. 내가 아직은 그와 같은 깨달음을 얻지 못했기 때문이다.


3부의 길 중에 영혼의 길과 기도의 길, 진실의 통찰, 부모로부터 깨닫는 길, 예수의 길 등은 이전에 어느 정도 방향이 잡혀 있었다. 그동안 신과의 대화를 통해 우리 미래를 살리기 위해 어떤 일들이 필요한 지 수없이 듣고 또 들었던 것들이었다. 거기에 지구를 살리는 길과 깨달음의 길, 나를 찾는 길 등이 추가되었다. 그리고 이전에 방향이 잡힌 것들 역시 흐름을 따라 새로운 대화들이 추가되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한 장 한 장 올리는 일이 쉽지는 않았다. 이 연재는 작년 4월에 시작했는데 그 마지막 장을 올리기까지 반 년 이상이 걸렸다. 처음에는 한 장을 정리하는데 며칠 안 걸리던 것이 1주일, 2주일, 나중에는 거의 한 달이 걸리기도 했다. 때로는 이 원고 앞에 마주앉을 수가 없었다. 무엇인가가 가로막고 ‘아직 준비가 안됐어! 준비가 될 때까지 기다려!’ 하는 느낌이었다. 놀 수 있는 시간은 많았지만 다른 일은 잡히지 않았고, 놀거나 다른 대화를 하면서 가슴에서 부를 때까지 기다리는 게 일이었다. 한 달 한 달 생활비가 문제였지만 이 원고를 중단할 수밖에 없을 정도의 상황은 일어나지 않았다. 그런 상황에 처하기 전에 누군가가 도와주거나 후원회비가 들어오거나 돈이 생기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었다.

나는 아직 진실을 묻고 있다. 진실은 무엇일까? 이 책은 끊임없이 새로운 진실들과 만나기를 원했다. 미래에 대해서, 그리고 신에 대해서, 우리들 인간에 대해서, 지구에 대해서, 삶에 대해서, 그리고 나에 대해서까지 새로운 진실과 만나기를 끊임없이 요구해왔다. 나는 많은 벽을 넘어서야했다. 내가 가진 많은 두려움들과 싸워야했고, 신의 말씀이더라도 정말 납득할 수 있을 때까지 물어야 했다. 그리고 지금도 나는 진실을 묻고 있다. 그 물음은 내 삶이 끝날 때까지 끝나지 않을 것이다.  
여기에 신의 말씀으로 쓰인 것들이라고 반드시 진실이라고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나는 지금도 그것들을 지켜보고 있다. 여기서는 그것이 우리 미래에 필요한 말씀인 지, 충분히 그럴듯한 지, 그리고 전체적으로 모순이 없는지만 검증한 것이다.
지구나 인류의 과거에 있었던 일들 중에 많은 일들은 지금으로서는 증명할 수 없는 것이다. 증명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렇지만 우주의 기원이나 지구의 기원에 대한 신의 말씀이 창세기보다는 훨씬 그럴 듯하다. 우리가 외계에서 기원했다는 것은 상당한 논란거리가 될 지도 모른다. 플레이아데스로부터 왔고, 외계인들에 의해 우리 육신이 창조되었다는 말은 그리 기분 좋은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것은 인류 역사의 문명 시간이 불과 5~6천년에 불과한데, 인류의 두뇌는 왜 이전의 인간들과 비교할 수 없이 뛰어난 지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렇지만 신의 말씀이 내가 가진 생각의 반영이 아닐까 수없이 되물어보기도 했다. 여기에 쓰인 신의 말씀은 지구 중심적이고, 인류 중심적이고, 한민족 중심이고, 내 개인 중심으로도 비춰질 수 있다. 지구를 우주의 꽃이라 하고, 인류를 충분한 깨달음을 얻은 준비된 영혼들이라고 하고, 한민족의 시조라 할 수 있는 환웅의 나라를 깨달음의 나라라고 하고, 내 자신의 전생을 그 국가의 시조인 환웅이라고 하는 것은 내 자신의 시나리오일수도 있기 때문이다. 내 자신에 대해서는 환웅과의 연관성을 느낀 적이 있지만 바로 그 환웅의 전생을 나는 확실하게 기억하지는 못한다. 설사 기억한다고 해도 그것이 신의 말씀의 진실을 증명하는 것은 아니다. 그렇지만 이 말씀들이 진실이라면 내 자신에 대해 이야기되었다고 버려야 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이제 여러분들이 판단해야 될 몫이다. 
많은 진실들은 미래에 우리가 그 일들을 격을 때나, 더 많은 사람들이 당신과 대화하게 될 때 밝혀질 지도 모른다. 지금 내가 보일 수 있는 것은 내가 신이라는 존재와 이와 같은 대화를 했다는 것뿐이다. 이것은 내게 일어난 일이다. 그와 같은 일이 당신에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리고 당신에게도 이와 같은 논조의 말씀을 하지 않으신다면 당신 역시 완전히 믿지는 못할 것이다. 이렇게 대화하기를 바라거나 그럴 수 있다고 수긍하거나 아니면 그것은 신의 말씀이 아닐 거라고 거부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결론이 진실인 것은 아니다. 문제는 우리의 선택이 진실과 얼마나 가까우냐는 것이다.


나는 진실을 사랑한다. 내가 납득하기 힘든 일들은 묻고 또 묻는다. 그렇지만 나 혼자서 모든 진실을 찾아낼 수는 없는 일이다. 내가 한 일은 신과 함께 그 진실의 얼개를 짜는 일이었을 것이다. 신의 이름으로 말씀하신 것들이 진실이라면 말이다. 그렇지만 이제 그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여기에 말씀하신 것은 지금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지 우리 인간이 받아들여야 할 진실의 전부는 아니다. 그 일들은 나와는 다른 사명자나 어쩌면 당신의 일일지도 모른다.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나의 두려움 때문에 더 자세히 묻지 못하거나 받아들이지 못한 것들도 많다. 이 책을 준비하면서 어려웠던 것 중의 하나는 미래의 환란에 대한 두려움이었다. 그 무시무시한 모습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쉽지 않았다.(나는 아직도 두렵다.) 그 안에 깃든 새로운 진실들이 아니었다면 분명 이런 책을 준비하면서 3년을 허비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외계인이 지구에 와서 지금 우리의 육신을 만들어내는 과정도 더 자세히 묻지 못한 것은 진실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 일들의 일부는 다른 채널러들도 말하고 있는 것이었고 그들이 말하는 것과 얼마든지 비교될 수 있다는 것도 두려웠다. 아틀란티스와 레무리아, 특히 레무리아에 대해서는 자세히 물을 수가 없었다. 어떤 것들은 과거에 포톤벨트나 다른 채널링 메시지에서 보았던 것들과 혼동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거기서 진실을 찾기 위해서 나름대로 묻고 또 묻기를 반복했다. 그 일은 앞으로도 계속 될 것이다.
이 대화는 분명 나의 에너지 끌개에 의해서 많은 차이가 생긴다. 신의 말씀에 의해 나의 생각이나 관념이 무너지기도 하지만 종종 나의 의식이 한동안 신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거나 휘어지게도 한다. 그래서 신의 말씀으로 쓰인 것들도 종종 틀릴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이 책에도 그런 부분이 있을 지도 모른다. 그것은 신의 말씀이 틀린 것이 아니라 내가 잘못 받아들인 것이다.

진실이란 무엇일까? 나는 지금 그것이 무엇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내 안에서 용솟음치는 그 숨소리와, 그 파동, 그 빛을 느낄 수 있다. 그에게 집중할 때 나의 가슴에는 신성한 빛의 물결이 흘러넘친다. 그것은 때로 부드럽고 은은한 빛으로, 때로는 주체할 수 없는 파도와 같이 내게 밀려온다. 나는 그를 거부할 수 없다. 그가 내 가슴 안에서 용솟음쳐 나오려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그것은 지상에서 누릴 수 있는 최고의 행복일 지도 모른다. 그것이 지난 3년 동안 여러 가지 힘든 상황 속에서도 나를 포기하지 않게 했다.
그는 자신의 모습을 우리 앞에 드러내고 싶어 한다. 그가 우리의 친구임을, 그가 우리의 온전함임을, 그가 우리의 자유임을, 그가 우리의 길임을..... 그리고 그는 우리와 대화하고 싶어 한다.

앞으로 내가 어떤 일을 하게 될지는 모른다. 앞으로도 나는 신이 이끄는 흐름을 받아들일 것이다. 나에게 기회가 주어지는 것들을 받아들이고, 나와 인연이 되는 사람들을 만나고, 내 가슴이 원하는 일들을 위해 기도할 것이다. 충분하지는 않지만 내가 가진 것들을 나눌 기회를 가질 것이고, 나눔을 통해서 세상을 배울 것이다.
그리고 신이 말씀하신 것처럼 신과의 대화 프로그램을 진행할 것이다. 그렇지만 아직 두려움이 있다. 사실은 지난 해 그 프로그램의 1차를 시작했다. 그것은 ‘묻지마’ 프로그램이다. 프로그램을 시작하기 전까지 진행하는 사람조차도 어떤 프로그램이 이루어질지 모른다. 매순간 신의 말씀으로 프로그램이 정해진다. 많은 사람들 앞에서 가슴으로 신과 만난다는 것은 큰 용기와 믿음이 필요한 일이다. 그것은 매순간 큰 도전이고 나는 여전히 그 일을 잘 해 낼 수 있을지 두려워한다. 내가 다시 용기를 낼 수 있다면 신과의 대화 프로그램은 곧 다시 시작될 것이다. 그리고 신과의 대화와 프로그램에 대한 안내는 하누리의 홈페이지인  http://www.h-internet.com 을 통해서 계속 이루어질 것이다. 여기서는 이 책에 소개되지 않은 다른 대화와 이 책의 중간 원고도 볼 수 있게 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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