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가 생각과 감정의 어린의식을 멈추고 너희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면 너희 안의 길이 눈을 뜰 것이다. 그것은 너희를 더 큰 근원의 감각에 맡기는 것이다. 이 길을 열면 어떤 어려움도 이길 수 있다. 미래의 어떤 어려움도 그 길을 막을 수 없다.
어느 누구도 그 길을 막을 수 없다. 그 안에 모든 길이 있다. 그 안에 모든 답이 있다.
단지 그것뿐이다. 길이 열릴 것이다. 너희가 스스로 가려고 하지 않으면 이 길은 열릴 것이다.
이루어지는 대로 맡기면 그 길에 들 것이다. 그것이 환웅이 열었던 길이었다.
-아무 생각도 하지 말라는 건가요? 그렇지는 않다. 이는 생각을 하지 않는 게 아니라,
너희의 작은 의식의 생각을 멈추고 너희의 작은 마음이 지어내는 감정을 멈추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 안의 더 큰 의식이 깨닫고 더 큰 마음이 일어나 느끼고 활동하게 된다.
너희의 작은 나를 쉬게 하고 너희의 근원에 있는 더 큰 나로서 사는 것이 이것이다.
-그렇지만 이렇게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들을 포기하고 더 큰 존재의 감각에 내맡기기까지 시간이 필요하잖아요. 그런 감각을 익히기까지요. 되어질 것이다. 너희가 너희 안의 진실에 집중할 때 그 눈이 뜨이고 그 감각들이 일어날 것이다. 가슴 한 가운데 마음의 자리를 지켜보라. 그러면 그 마음의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진실한 마음이 이 문을 여는 열쇠다. 너희 자신을 진실의 자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것은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 자신을 위해서다.
그것은 너희 자신의 여린 여러 모습을 받아들일 때 그 스스로 말하기 시작한다.
-생각을 멈춘다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것조차 하나의 생각이고, 우리는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에 따라 항상 생각하는 습성이 붙어 있습니다. 생각과 깨달음은 의식의 일이다.
그러나 생각은 너희의 작은 의식의 일이다. 그것은 진실에서 벗어나 있다.
그것은 너희의 작은 마음들이 선 자리에 따라 무수히 많은 색깔을 띠게 된다.
그렇지만 깨달음은 하나의 온전한 진실에 다가서는 것이다.
작은 마음들이 이끄는 대신 너희의 큰 마음이 진실을 찾아내는 것이다.
그때 너희 가슴은 평화롭고 따뜻하다.
그래서 깨달음은 너희가 작은 생각들을 버리고 가슴에 집중할 때
너희의 마음이 커지면서 오는 것이다.
-큰 마음과 작은 마음은 어떻게 다른가요? 큰 마음과 작은 마음은 너희 안에 있다. 작은 마음은 여럿이고 자신을 드러내고 다른 마음을 지배하고 싶어한다. 한 작은 마음이 너희를 지배하면 다른 작은 마음들은 기죽게 되고 불만이 쌓이게 된다. 여러 작은 마음들이 너희를 지배하기 위해서 다투게 되고 너희는 진실에서 동떨어진 채
에고의 삶을 살게 된다. 에고는 너희가 아니다. 너희 안의 작은 아이들이다. 그들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그들이 만들어내는 생각을 멈추는 것이다. 이미 모든 생각이 일어나 있다. 그 중에 어느 하나에 이끌려 들어가 그 종이 되는 것이 너희 생각이다. 그것은 오랜 관성이 지배하는 것이지만 너희가 큰 마음의 자리인 가슴에 집중하고 그 느낌을 지켜볼 때 그 지배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럼 큰 마음은 하나뿐인가요?
그것은 하나가 아니다. 너희의 큰 마음은 너희의 더 큰 근원의 마음과 연결되어 있다. 너희가 큰 마음에 귀 기울이게 되면 거기에는 길이 새롭게 열릴 것이다. 큰 마음들은 너희 기몸의 마음이기도 하다. 그래서 너희 마음을 키우는 게 너희 기몸을 키우고 너희 사랑을 키우는 것이다.
-그럼 우리가 생각을 멈추고 깨달음의 소리를 듣게 되더라도 그게 다는 아니겠군요.
더 큰 마음이 있다면 또 새로운 깨달음들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렇다. 너희에게 이렇게 나를 드러내는 것은 그 때문이다. 너희 가슴에서 나의 소리가 들리게 하라. 그것은 너희가 자신의 가장 큰 마음을 지켜보고자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혼의 길이 너희의 시작이 되는 것이다.
-그냥 가슴 한 가운데만 지켜보면 되는 건가요?
가슴이 너희 삶의 주인이 되게 하라. 가슴을 느끼고 가슴이 원하는 일을 하라. 가슴으로 세상을 보고 가슴으로 듣고 가슴으로 말하게 하라. 그게 너희의 진실을 키우는 법이다. 그리고 너희의 더 큰 진실의 소리에 귀 기울여보라. 그게 영혼의 길이다.
-보고 듣는 것은 가슴과 거리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보고 들을 때는 가슴을 잊게 됩니다.
너희의 눈을 가슴으로 끌어내려라. 너희의 귀를, 입을, 코를, 그리고 손끝과 발바닥을 가슴으로 끌어와라. 너희가 생각으로 달려가기 전에 가슴이 먼저 느끼게 하라. 그런 다음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다. 보이는 것은 진실대로 보이고 들리는 것은 진실대로 들릴 것이다. 그렇게 보고 듣고 느끼게 되면 너희는 가슴을 보려하고 가슴을 들으려하고 가슴을 느끼려할 것이다. 그러면 너희 세상의 모든 것들을 그 겉모습이 아닌 그 가슴의 진실로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기쁠 것이다. 가슴의 진실을 만날 때 너희는 서로 기쁠 것이다. 너희 친구들과 가족들, 이웃들이 모두 친구로 느껴지고 이 세상의 모든 나무와 풀과 짐승들과 살아있는 것들과 지구와 태양과 달과 별들이 가슴으로 만나질 것이다. 너희에게 다가오는 이들의 이해관계 대신 그 가슴의 진실이 보일 것이다.
-그럼 원수와 적들도 가슴으로 볼 수 있나요?
그렇다. 가슴에 집중하고 너희가 미워하거나 싫어하는 원수처럼 여기던 사람들의 가슴을 지켜보라. 그러면 거기에 연민이 일어날 것이다. 가슴은 그들의 진실을 알고 있다. 그들은 두려워하거나 미워해야 될 이들이 아니라 자신의 에고에 지배당하는 불쌍한 이들일 뿐이다.
-그렇군요. 예수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도 가슴에 귀 기울일 때 자연스럽게 우리 안에서 이루어질 수 있군요. 우리 자신이 누군가를 미워하거나 두려워하는 감정도 이해할 수 있을 거고요. 그렇다. 그래서 가슴이 너희 삶의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영혼의 길이다. 너희가 그 진실을 받아들이고 그 마음을 이해하면 어린 의식에서 벗어나게 된다. 이것이 not-doing이다. 이것이 명상이다. 의식을 멈추고 나에게 돌아오는 명상이다. 이것이 무위(無爲)이다. 무위는 영혼이 일하도록 작은 의식을 멈추는 것이다. 의식이 하는 일은 많은 생각을 만들고 그것들의 에너지에 집착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벗어나 너희의 영혼으로서 사는 것이 not-doing이고 무위이다.
무위는 영혼이 이끄는 대로 사는 것이다. 영혼으로부터 온전한 의문이 나와 너희를 이끌 것이다.
-온전한 의문이란 어떤 것입니까?
영혼의 의문을 온전한 의문이라고 한다. 너희는 일상생활에서 수많은 의문을 일으키지만 그 중에 너희 삶을 이끌어가는 것은 많지 않다. 온전한 의문은 너희 삶을 이끌어가는 의문이다.
-어떻게 하면 무위의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마음을 지켜보는 관찰에서 시작된다. 가슴에서 울리는 마음의 소리를 들어라. 마음이 말하는 소리를 들어라. 그것에 따라 사는 것이 무위의 삶이다. 너희의 의식은 쉬고 고요하게 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필요한 진실이 가슴에서 떠오르며 너희를 안내한다. 이 떠오름이 곧 영혼의 안내이다. 의식을 멈추고 마음 안의 한 자리를 지켜보라. 영혼의 지혜가 말할 것이다. 그 소리에 따르는 것이 무위의 삶이다.
-우리의 삶은 직업이나 취미, 여행이나 여가를 위해서도 수많은 지식을 필요로 합니다.
그런데 당신은 지금 우리에게 내면의 한 곳을 바라보기를 원하고 있습니다.
우리 밖으로부터 전달되는 지식은 필요 없습니까? 물론 그것 역시 필요하다. 하지만 너희가 무엇을 해야 하고 어떤 지식을 얻어야 하는지 말해주는 것 자체가 마음의 소리다. 그것이 너희를 지름길로 안내할 것이다. 그것이 너희를 이끌 것이다. 그것이 너희를 나에게 이끌 것이다. 그것이 너희를 깨우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게 할 것이다. 내면의 소리가 떠오르도록 생각을 멈추는 것이 명상이다. 모든 순간에 명상하라. 모든 것들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으로 말하라. 모든 지식을 마음으로 받아들이고 마음의 자리를 관찰하라. 그렇게 되면 영혼의 깨달음, 영혼의 완성에 이를 것이다.
2장. 기도의 길 지금 나는 너희에게 기도하는 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기도는 의로운 이들의 방편이다. 기도는 자신을 버리기 위한 준비이며 너희 마음을 예비하는 것이다. 기도는 영혼의 더 높은 자리로 나아가기 위한 디딤돌이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자는 나를 예비하고 받아들이기 위해 기도하며 의로운 일을 이루기 위해 기도한다.
-기도의 예를 보여주시겠습니까? 그런 예는 의로운 이들이 보일 것이다.
-예수의 기도가 그것입니까? 그렇다.
-저의 뜻대로가 아니라 하나님 당신의 뜻대로 이루어지게 하소서! 그렇다.
너희를 버리지 않으면 기도가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도는 너희를 버리고 나에게 오는 것이며 의로움을 이루는 것이다.
-우리가 당신에게 어떻게 기도해야 되는지 모르겠습니다. 감사의 기도일 지, 제 자신에게 어떤 것이나 길을 달라고 해야 할지, 어떤 일이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할지? 너희의 바탕에 있는 더 큰 기몸에 에너지를 집중하는 것이 기도이다. 기도란 의식을 나에게 돌리고 너희의 진실한 마음을 내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그러면 너희 안의 내가 너희에게 응답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의 기도가 진실하지 않다면 나의 응답은 너희 안에 없을 것이다. 의로운 일이라도 때에 이르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는다. 기도는 기를 모아서 이루는 것이지 내가 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나는 개인의 하나님이 아니라 모두의 신인즉, 너희의 개인적인 기도를 받지 않는다.
너희들 자신을 변화시키기 위해 기도하라. 너희 자신이 변하면 모든 것이 변한다.
-개인적인 기도를 받지 않는다고요? 그렇다.
너희가 진실할 때는 이미 개인이 아니라 영혼이다.
-당신이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는 게 아닌가요?
기도를 이루는 것은 너희 자신이다. 너희의 진실이 모두의 가슴에 전달되면 모든 영혼들이 너희의 진실에 귀 기울인다. 그들을 바꾸어내는 것은 너희의 진실이다. 내가 너희의 기도를 들어주기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 당신은 우리가 기도할 때 무엇을 하나요? 기도하는 너희를 지켜본다. 너희는 이미 나의 일부이다.
기도를, 너희는 기도하고 신인 나는 들어주는 것으로 오해하지 마라. 너희의 진실을 모든 이의 진실로 끌어내리는 게 기도이다.
-그럼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너희의 진실로 기도하라. 너희의 권위와 명예와 가진 것들을 내려놓고 너희의 가장 겸손하고 진실하고 순수한 마음으로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희 안에서 나의 응답을 얻을 것이다. 너희의 진실이 무엇이었는지 돌아보면서 너희의 정성을 다하고 나서 기도하라.
너희의 이익을 위해서가 아니라 너희 영혼을 위해서, 권리를 위해서가 아니라 기꺼이 받아들인 사명을 위해서, 너희의 친한 이들만이 아니라 너희와 같이 사는 이웃들을 위해서, 강한 자를 위해서가 아니라 약하고 연약한 자를 위해서, 그리고 진실한 이웃들을 위해서 기도하라.
기도를 너희 일의 시작이 되게 하라. 기도로서 내게 가까워질 때 너희의 가슴에서 거대한 사람의 힘이 우러나옴을 보게 되리라. 그것이 기도이다. 내가 너희의 청을 들어주는 게 아니라 너희가 나의 자리에 가까워져서 너희에게 주어진 사랑의 권능을 쓰는 것이 기도이다. 너희의 순수하고 진실한 기도가 모든 것들의 영을 지배할 수 있다. 가슴의 진실로 기도하라. 가슴이 원하는 진실을 기도하라. 너희의 의식을 쉬게 하고 너희 안의 더 큰 나에게 이르기를 기도하라. 너희가 자신을 바꾸고자 하는 게 기도이다. 너희가 바뀌어서 그 힘이 드러나는 것이 기적이다. 내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너희 근원의 나의 자리로 돌아가고자 하는 게 기도이다. 너희의 더 큰 기몸이 너희 현실이 되도록 너희의 마음을 열고 근원으로 이끄는 게 기도이다. 그런 기도가 너희를 이끌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기도를 하지만 그 기도가 잘못된 것 같습니다. 그들은 얻을 수 없는 것을 원하고 공짜를 바라면서 어떤 특혜를 원합니다. 바른 기도법을 말씀해 주시겠습니까? 바로 이 문제가 너희를 어린 자로 머물게 해 왔다. 너희는 무엇을 얻기를 원하나 나는 이미 너희에게 모든 것을 주었다. 너희의 행복은 늘 너희 곁에 있고 너희의 불행도 너희 곁에 있다. 너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그 어떤 보석보다 귀중한 것이다. 너희는 그 중에 너희가 원하는 것만을 보려하고 너희가 좋아하는 것만을 원하고 그것을 얻기 위해 기도한다. 너희의 많은 기도들이 나에게 원하는 것이나 그 중의 하나도 사사로이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의 기도 중에 이 우주의 원리를 무시하는 어떤 일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는 나에게 이르기 위해 기도하고 너희 안에서 나의 소리를 듣기 위해 기도할 수 있으나 기도만으로 어떤 일이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아야 한다. 너희의 기도는 너희 마음을 나에게 모으기 위한 것이며 먼저 너희를 변화시키기 위한 것이다. 이는 의식의 변화를 원하는 것일 뿐이다. 그러나 많은 종교의 사제들은 이익을 구하는 마음으로 기도했고 이익을 마치 나의 뜻으로 얻은 양 오해하도록 했다. 너희는 의로운 일이 아니면 기도하지 말라.
의롭지 못한 기도는 너희 몸과 마음을 상하게 할뿐이다. 의로운 마음은 집단이나 인류의 행복을 위한 마음이 아니라 그 영혼의 완성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다. 의로운 자의 기도는 항상 나를 기준삼고자 하며 나의 온전함에 비추어 스스로 이루기를 원한다. 의로운 자의 기도는 마음의 진실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며 내게 스스로 갈 길을 묻는다. 의로운 자의 기도는 믿음이 온전하여 헛된 것을 구하지 않으며 사사로운 이익을 위하여 기도하지 않는다. 의로운 자의 기도는 자신의 이름이 세상에서 커지기를 원치 않으며 나에게 가까워지기를 원한다. 그러한 자는 너희 중에 보기 드물다.
-기도하는 마음이 의롭기만 하면 되겠습니까? 그 어떤 기도문도 필요치 않습니까? 마음의 기도면 된다. 마음이 원하는 바가 의로우면 기도의 의식이 없어도 이루어진다. 의로운 마음이 되라.
-우리는 무엇인가를 바랄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원하는 무엇인가가 당신을 통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는 어떻습니까? 무엇을 이루려면 나에게 기도가 아니라 너희 스스로의 힘으로 이루어야 한다. 무엇인가를 이루는데 나의 힘이 필요하다면 나에게 이르기를 기도하라. 나에게 이르려 하면 너희의 원하는 일들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것은 너희 내면의 힘을 쓰는 것이다. 너희의 기도로 이루어지는 일들은 이미 이루어질 일들이다. 그것이 결코 나의 응답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나는 너희가 노력 없이 이루게 하지 않는다.
너희에게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일들은 영혼의 차원에서 너희를 시험하는 것이다. 그런 즉 너희는 나에게 이르기를 기도하는 것 이외에 어떤 기도도 이루어지지 않음을 알라.
-기도가 이루어졌다고 믿는 일들이 있습니다. 기도의 힘만으로 난치병이 치유되거나
기적같이 살아나거나 거의 이루어질 수 없는 일들이 이루어지기도 합니다.
사람들은 그 일들이 기도의 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들은 이미 이루어질 일들이고 너희 영혼이 관계된 것들이다. 그 일들에 내가 관여하지 않는다.
-그럼 기적이란 없는 건가요?
무엇인가를 간절히 바랄 때 불가능한 것처럼 보이던 일들이 이루어지는 것들은? 기적이란 기가 모여서 드러나는 것이다. 기는 너희 마음을 담는 그릇이며 물질의 바탕이 된다.
너희 마음이 모아지면 기가 만들어진다. 그 기가 많은 벽을 넘어서 너희 눈에 드러나는 것이 기적이다.
-당신은 미래의 환란 속에서 우리가 살 길은 위대한 영혼이 되는 길에 있다고 하셨습니다.
위대한 영혼이 되고자 한다면 어떻게 기도해야 합니까? 그러기를 원한다면 기도하라. 너희의 작은 마음을 버리고 그 마음으로 기도하라. 너희 안의 위대함에 초점을 맞추고 집중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렇게 될 것이다.
-저희는 이 시대의 십자가를 질만큼 의롭지도 못하고 예수가 갔던 길을 따라갈 만큼의 용기도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기보다는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데 급급하고 당신을 구하는 마음도 부족합니다. 저희는 깨달음이 부족하고 지혜가 부족하고 사랑이 모자라나 당신에게 이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저희 같은 어린 양들에게도 당신에게 이를 수 있는 길이 열리기를 기도합니다. 의로운 마음으로 기도하라. 너희의 있는 그대로를 내게 보이고 너희 스스로 이룰 수 있는 최선을 이룰 수 있기를 기도하라. 어린 마음을 드러내고 진실한 마음으로 기도하라. 그리하면 너희의 부족함 속에서 의로움이 너희를 이끌 것이다. 예수의 마음이 너희를 나에게 이끌 것이다. 어리다고 포기하지 마라. 어렵고 힘들다고 포기하지 마라. 어렵고 힘들 때마다 너희 자신의 진실로 돌아가라. 그리하면 너희의 진실한 마음의 기도가 시작될 것이다. 그 기도가 너희를 나에게 이끌 것이다.
어린 영혼의 기도가 그것이니 너희의 기도가 나의 응답을 얻을 것이다.기적이 이루어지리라. 이는 어린 영혼을 위한 응답이다.
-미래의 환란으로부터 많은 이들이 스스로 자신을 구원할 수 있기를, 그리하여 먼저 자신을 구한 이들이 다른 이들을 도와 당신에게 이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기도의 모임이 인류를 이끌리라. 오직 의로움으로 기도하라. 그 시작은 미약하나 그 끝은 창대하리라. 이제 너희 중에 의로운 이들이 나의 소리를 들으리라. 진실한 이들이 먼저 나의 문을 두드리며 거룩한 길을 이어가리라. 너희에게 교회도 없고 사원도 없으나 의로운 무리가 갈수록 커지며
그 기도에 응하는 은은한 기운이 너희를 도우리라. 모임이 커지나 어떤 계율이나 규칙도 없으리라. 진리가 너희와 함께 하며 의로움은 너희를 낮추나 어떤 악도 너희 몸을 범하지 못하리라. 어떤 어리석음도 너희 영혼을 어지럽히지 못하리라. 어떤 에너지도 너희를 괴롭히지 못하리라. 이는 너희가 나와 함께 있기 때문이다.
-저희가 먼저 하나의 밀알이 되어 수많은 밀알들이 열매 맺기를 기도합니다.
그와 같이 이루어지리라. 이른 봄에 이르러 그 싹이 대지를 덮으며 여름의 장마가 오기 전에 큰 수확이 있으리라. 너희가 언 땅에 들어가 스스로 땅에 묻힐 때 한 줌의 밀알일 것이나 여덟 해가 지나면 그 양을 헤아릴 수 없으리라.
-저희의 지혜가 비록 작으나 이웃을 위해 진실한 도움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지혜가 너희의 의로움 속에서 크리라. 어진 마음이 일어나 원수를 용서하며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리라. 모든 일의 근원을 통찰하며 그 영혼의 진실을 알며 온전한 도움의 길을 열리라. 의로움이 온전한 깨달음을 열리라.
-많은 사람들이 당신의 응답을 받기를 기도합니다. 진실로 기도하는 자는 나의 응답을 받으리라. 진실이 나의 열쇠니 의로운 이들이 먼저 나의 응답을 얻으리라.
3장. 진실의 통찰
진실을 통찰하라. 진실이 너희를 이끌 것이다.
진실이 너희 안의 위대한 지혜를 깨우치게 할 것이다.
그리하면 너희 안의 위대한 영혼이 눈뜨리라.
-진실이란 우리 눈에 보이는 그대로는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의 성격이나 처한 입장, 그 당시의 기분, 주변 사람들이나 환경, 기대나 두려움, 과거의 경험, 지식에 따라 다르게 보입니다. 그런 차이를 객관화한 사실이라는 것도 한계가 있습니다. 세상을 눈에 보이는 것에 한정시킨다면 사실이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를 받아들이게 된다면 사실이란 서로가 합의할 수 있는 최소한의 진실일 뿐이니까요. 여기서 당신이 말씀하시는 이 진실, 우리가 통찰해야 될 이 진실이란 무엇입니까? 진실이란 너희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내면에서 크게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전체이다. 그것은 너희에게 일어난 일들을 꿰뚫어볼 때 그 온전함이 드러나는 것이다. 그것은 너희가 선 자리에서부터 나에게 이어져있다. 너희가 희미한 흔적을 찾아 길을 찾듯이 진실은 눈에 보이지 않는 데서 찾는 길이다. 진실은 진리의 나뭇잎이고 내 몸의 세포다. 그 몸을 자각하고 자신이 선 자리를 자각하는 게 진실의 통찰이다.
너희 자신을 알고 있다고 믿느냐? 그것은 단지 너희가 서 있는 자리의 진실에 해당하는 것뿐이다. 진실은 너희의 일에서 일로 보이지 않는 기운으로 연결되어 있다. 너희 삶의 표면에서 전혀 연관없는 만남들이, 일들이, 사고들이 영적으로 연결되어 있다. 그 속에 깃든 진실을 만나기까지 너희 삶은 여러 일들을, 여러 만남을 거듭한다. 그 보이지 않음이 보일 때까지 삶은 같은 자리에 머문다. 그 일들이 일어나게 하는 것은 너희 자신의 진실이다. 그 진실이 무엇인지 통찰하라. 너희가 여기에 충분히 자유로울 수 있으면 곧 너희 삶의 곡조도 변해간다. 그러나 두려워하는 마음은 너희의 삶을 반복되게 한다. 너희의 욕심이나 집착도 너희를 어리석게 하고 진실을 보기 힘들게 한다.
-진실이란 결국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전체인가요? 그것이 나의 진실이다.
-그럼 우리의 진실은?
그것은 너희가 선 자리에서 영혼을 통해 나에게 이어져 있다. 너희 기몸이 곧 너희의 진실이다.
-당신은 우리가 알고 있다고 믿는 자신은 우리가 서 있는 자리의 진실에 해당하는 것뿐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진실은 그 자리에서 당신에게 이어져 있다고 말했고요. 그럼 진실이란 궁극의 하나의 전체이면서 여러 차원의 충을 갖는 것입니까?
그렇다. 너희의 진실이란 나무의 나뭇잎과 같다. 너희가 선 자리에 따라 그 진실은 달라진다.
-그럼 진실의 통찰은 우리가 선 자리, 즉 우리 자신의 진실을 알아가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야겠군요? 그렇다. 너희 자신의 일을 그 시작으로 삼아야 한다. 자신 안에 있는 여러 마음들을 이해해보라.
괴로운 일들, 슬픈 일들, 기쁜 일들, 즐거운 일들 모두 너희 안에 있다. 질투와 노여움과 공포도 너희 안에 있다. 젠체함과 꿈꾸는 마음과 기대는 마음이 너희 안에 있다. 용기와 정의로움과 자유로움과 호기심과 자비심도 너희 안에 있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과 근원으로 돌아가려는 마음과 크게 나누고 싶어 하는 마음과 여린 이들을 돌보고 싶은 마음도 너희 안에 있다. 그것이 너희의 진실이다. 그 중에서 무엇을 선택할 때 너희의 진실이 이루어진다. 그것은 너희가 선택한 진실이다.
-우리 안에 모든 것이 있다면 그것을 바라보는 게 진실의 통찰인가요?
그것이 시작이다. 그것은 진실의 눈이 되는 새싹이다.
-우리는 왜 자꾸 진실에서 멀어지는 걸까요? 당신이 앞서 말한 대로 많은 삶을 체험하고 영혼의 위대함을 성취했던 우리가 여기선 초라한 진실들과 마주하고 있잖아요. 그것이 너희 삶이다. 삶이란 거친 들판에 피는 꽃과 같은 것이다. 너희가 처음부터 모든 진실을 볼 수 있다면 삶은 인형놀이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너희의 지혜는 기몸과 함께 얼어있고 너희가 그 눈을 뜰 때까지 온전함은 그 진실을 숨기고 있을 것이다. 너희가 진실을 외면하는 것은 너희의 언 마음이 나뭇잎들이 만들어내는 환상의 움직임들을 쫓기 때문이다. 너희는 눈에 보이는 그것이 너희 세계의 전부라고 믿고 있다. 그렇지만 그것은 단지 너희가 선 그 자리에서 너희가 붙잡고 있는 진실에 불과하다. 너희가 삶을 고통스럽게 느끼는 것은 너희의 기대에 스스로 무너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진실로 온전한 고통이 아니다. 그것은 너희 감정들의 고통이지 너희의 고통도 아니다.
너희는 어떤 것으로부터도 상처받지 않는 온전한 존재이다. 너희는 이미 온전한 기몸, 온전한 영혼의 몸을 갖고 있어서 어떤 일도 너희를 해칠 수 없다. 너희를 해치거나 상처 입히려는 것들은
실제로는 너희가 어떤 위험이나 공격으로부터도 상처받지 않는다는 자각을 돕는 것이다. 너희가 그런 일들의 진실을 무시하고 그 겉모습에 스스로 두려워하기 때문에 상처받는 것이다. 너희가 누군가를 공격하는 것 역시 그렇다. 너희는 단지 자신을 공격하고 자신에게 상처를 줄 수 있을 뿐이다. 그 진실은 너희 자신의 잘못된 생각으로 너희 자신을 괴롭히는 것뿐이다. 너희가 서로에게 상처를 준다고 믿는 것은 물질세계의 환상에 익숙해진 때문이다. 그 진실을 통찰하라.
너희가 진실을 통찰하면 너희는 모든 일들 속에서 나의 참모습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이 우주의 모든 것들이 너희를 돕고 있음을 보게 될 것이다. 진실이 말할 것이다. 진실이 너희에게 미래의 일들 속에서 가야 할 길을 말할 것이다. 미래가 어떤 것이든 그것이 너희를 도울 것이다. 지금까지 너희의 과거와 현실이 너희를 도와 왔듯이 너희 미래 또한 너희를 도울 것이다. 그 선악과 아름답고 추한 모습에 상관없이 모든 것이 너희 영혼의 선택임을 상기하라. 이는 진실을 통찰한 이들만이 알게 될 것이다. 너희가 온전한 눈을 가질 때 보게 될 그것이 진실이다. 너희가 지금 맞이하고 있는 현실은 모두 그 궁극의 진실을 갖고 있다.
그것을 보기는 쉽지 않지만 너희가 정말 진실을 보려한다면 너희는 그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진실을 보고 싶다면 너희가 이미 모든 것을 알고 있음을 믿어라.
이미 너희는 모든 진실을 알고 있다. 그것을 상기하는 것이다. 너희가 진실을 상기하고 싶다면 나에게 와야 한다. 진실이란 모든 일들을 신인 나의 눈으로 보는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가 선 그 자리에서 진실을 통찰하고 싶다면 너희가 만난 현실의 일들을 지켜보고 관찰하라. 그 일들이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그리고 그 속에서 너희가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지, 너희가 사랑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지켜보라. 그것이 너희 자리에서 진실에 다가서는 첫 번째 계단이다.
너희가 그 안에서 영혼의 장대함을 느끼기 시작한다면 두려움에 얼어버린 마음을 지켜보라. 너희가 온전한 진실을 보지 못하는 것은 너희 마음 안의 얼음이 있기 때문이다. 그 얼음에서 비롯된 두려움과 욕망과 집착이 너희 눈을 어둡게 하고 진실을 가린다. 너희 안의 얼음이 녹아 없어지면 너희는 너희 삶의 진실을 볼 수 있다. 너희가 두려움을 이해하고 너희 안의 얼음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게 되면 그 얼음은 서서히 녹아 없어지기 시작한다. 그러면 너희는 온전한 영혼의 눈으로 나의 진실을 보게 될 것이다. 그 진실은 너희에게 길을 열어줄 것이다. 너희는 또한 너희가 하고자 하는 일들의 진실을 통찰하라. 너희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 사랑은 어떤 것인지 지켜보라. 그 안에 깃든 바람이 어떤 사랑에 뿌리를 두고 있는지 그리고 그것을 이 세상에 뿌리내리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이 필요하고 그게 너희에게 무엇을 요구하는지 통찰해보라. 그리하면 너희 안에서 진실의 나무가 커갈 것이다.
-진실을 통찰한다는 것은 쉬운 듯 하면서도 쉽지 않습니다. 당신의 말한 것처럼 우리는 물질세계의 환상에 너무 익숙해져서 지독한 근시가 되어 있습니다. 우리 눈의 초점은 눈앞의 것들에만 고정되어 있어서 진실을 보기가 쉽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진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하는 이들은 우주와 삶의 의미를 쉽게 깨닫게 될 것이다. 진실의 통찰은 모든 보이는 것들의 내면으로 초점을 이동하는 것이다. 너희의 눈은 본래 나의 자리에서 비롯된 것이니 너희가 진심으로 원하면 모든 진실을 볼 수 있다. 너희가 눈앞의 것들만 보고자 하면 초점이 흐려져 눈이 나빠지듯이 너희가 물질세계에 집착하면서 진실에 초점을 맞추는 감각을 상실한 것이다.
나무를 보아라. 너희 가까이에 있는 가지 많은 나무들을 보아라. 밑둥에서 큰 기둥으로 일어나 큰 줄기로 갈라지고, 다시 작은 줄기로, 더 작은 가지로 갈라져 마침내 많은 잎을 피우는 것을 보아라. 이 우주의 진실한 모습이 이와 같다. 너희 인간이나 생명들, 물질세계의 존재들은 나뭇잎과 같고, 너희 눈으로 보는 것은 나뭇잎들이 바람에 흔들리는 것과 같은 것이다. 너희 영혼은 나무 가지와 같고 너희가 영혼의 눈을 뜨는 것은 이 나무 가지에서 잎을 돋고 있음을 보는 것과 같다. 나무의 가지들은 너희의 지구와 같은 영혼이다. 지구는 영적으로 너희 영혼들의 근원이고 나무의 작은 줄기와 같다. 그리고 지구와 같은 별들은 보다 큰 줄기인 태양계와 더 큰 줄기인 별자리에 이르고 마침내 나무의 기둥인 은하에 이른다. 이 우주는 이러한 나무들이 만드는 숲이다.
이 우주의 질서 역시 나무의 기둥에서 줄기, 가지에서 잎에 견줄 수 있는 여러 단계를 갖고 있다. 너희가 진실을 통찰하는 것은 잎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 핀 잎임을 보는 것이다. 그것이 살아있는 잎이고 살아서 산 보람이 있는 잎이다.
이 잎은 봄에 나와서 가을에 지지만 실제로 그 생명은 나뭇가지에 있다가 잎으로 나오고 다시 나뭇가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너희 인생이 이와 같다. 너희 영혼인 나뭇가지에서 여러 잎으로 나와서 살다가 다시 나뭇가지로 돌아가는 것이다. 너희가 육신의 죽음을 두려워하지만 그것은 너희의 죽음이 아니다. 육신이 죽으면 너희는 다시 나뭇가지인 영혼으로 돌아간다. 나뭇잎이 광합성을 통해 얻은 여러 대사산물을 가지로 보내고 나무가 성장하게 하듯이 너희의 삶 또한 너희 영혼을 성장하게 한다. 그리고 너희 나무는 이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으려 한다. 너희는 그 나무의 단순한 잎이 아니라 꽃으로 피어 있다. 너희가 이 자리에서 깨달음의 수정을 하고 그로부터 좋은 열매를 맺을 지, 나쁜 열매를 맺을 지, 수정도 못하고 시들어버릴 지는 너희의 선택이다. 주변 환경이 나쁘다고 탓하지 마라. 오히려 나무는 주변 환경이 나쁠 때를 위해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기 시작한 것이다. 이 지상에 나무가 견디기 힘든 겨울이 없었으면 꽃은 너희 앞에 없을 것이다. 진실을 통찰하고 싶다면 너희의 눈으로 너희 현실의 나뭇잎을 보지 말고 영혼의 눈으로 그 나무를 보라. 진실이 너희를 이끌 것이다.
-진실의 통찰이 결국 우리를 깨달음으로 이끄는 것입니까? 그렇다. 진실의 통찰이 곧 깨달음의 과정이다. 너희가 나무의 가지를 보게 되는 것은 깨달음이다. 가지에서 줄기를 보고 보다 큰 줄기를 보고, 나무의 기둥을 보고 나무를 보고 숲을 보는 게 깨달음의 과정이다.
이를 통해 너희는 나를 온전히 보게 되는 것이다. 진실이 이루어지면 진리의 아름다움이 드러날 것이다.
-진실을 보기 힘들게 하는 것들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습니까? 죄의식이 진실을 볼 수 없게 하는 가장 큰 요인이다. 죄의식은 스스로 지은 감옥과 같아서 진실에 접근할 수 없게 한다. 원죄가 없음을, 내가 어느 누구도 심판하지 않음을 밝힌 것은 그 때문이다. 오해에서 비롯된 잘못된 의식 역시 진실을 통찰하는데 장애가 된다. 이기심에서 비롯된 욕망들은 너희 눈을 어둡게 하고 (진실을 향한) 너희의 초점이동을 어렵게 한다. 의심과 두려움에서 비롯된 생각과 감정들은 너희의 눈을 여러 색으로 흐리게 하고 진실에서 멀어지게 한다. 이기심과 의심과 두려움에서 비롯되는 감정들은 너희의 기몸을 감싸고 생각을 옭아매서 마침내 너희가 빠져나오기 힘든 감옥과 같은 집을 만든다.
그것이 지옥이다. 그래서 너희가 오랫동안 그런 감정에 자신을 내맡기는 것은 위험하다. 감정들이 만들어내는 이 집은 오래되면 스스로 살아 움직인다. 이것이 너희의 닫힌 의식이다. 그것은 문이 닫힌 집처럼 새로운 생각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닫힌 의식은 너희의 과거에 이루어졌던 부정적인 생각들과 감정들이 마치 씨실과 날실처럼 짜여져 만들어진 집이다. 이 집에는 문이 없다. 그것은 너희 생각과 감정을 가두는 집이다. 이런 닫힌 의식은 그 안의 사람들이 새로운 생각을 가질 수 없게 통제하는 의식의 중력을 갖고 있다. 그것이 너희가 속한 집단의 의식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그로부터 진실을 통찰하기 힘든 이유이다. 닫힌 의식은 나에게 통해있는 문을 열지 못하게 하고 자신의 생각이 마치 너희의 생각인 것처럼 믿게 한다. 너희가 자신이라고 믿는 의식은 너희를 나와 분리시키고 너희 이웃과도 분리시킨다. 너희는 그것을 자신이라고 믿고 살아왔다. 너희의 부모나 이웃이나 친구들 모두 그렇게 믿고 살아왔다. 그러나 그것은 너희의 참모습이 아니다. 너희는 나에게 열려있는 존재다. 너희는 너희 몸의 세포들처럼 수많은 몸으로 나뉘어 우주에 나온 것이다. 너희가 물질세계에 들어오면서 나와 이어진 통로를 잃었지만 너희 존재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너희는 여전히 나의 일부이고 닫힌 의식의 감옥에서 나와 그 문을 열기만 하면 나의 자리로 돌아온다.
너희가 진실을 보려면 이러한 닫힌 의식에서 벗어나야 한다. 닫힌 의식이 너희에게 원하는 것은 나와 분리된 이름이다. 닫힌 의식은 스스로 자신을 어떤 존재로 한정짓고 자신에게 이름을 붙이려 한다. 그것은 나에게서 벗어난 감정과 생각들이 뭉쳐 하나의 독립된 생명체처럼 살아있는 것이다. 나에게서 벗어난 감정과 생각들을 뭉치게 하는 힘은 그들의 두려움이다. 그 두려움의 힘이 모여 의식이 이루어지면 너희에게 새로운 감정과 생각을 할 수 없도록, 나에게 돌아올 수 없도록 통제하는 것이다. 그러한 의식의 통제에서 벗어나려면 닫힌 의식의 존재를 통찰해야 한다. 너희라는 의식이 너희를 스스로 한계짓고 있음을 바라보라. 너희는 그런 닫힌 의식이 없이도 이 우주에서 훌륭히 지낼 수 있다. 너희가 닫힌의식을 버리고 진실을 받아들일수록 의식이 커지고 자유로워진다. 너희가 온전한 진실을 받아들일 때 너희는 의식의 한계에서 벗어난다. 진실의 통찰이란 너희의 작은 의식을 온전히 하여 신인 나의 의식에 이르는 방편이다.
진실의 통찰이란 닫힌 의식의 안경을 벗고 이 우주에 이루어진 모든 것을 온전히 보는 것이다.
진실을 통찰하기에 앞서 지금까지 너희의 생각을 한계 짓는 의식을 통찰하라. 너희의 의식은 너희 마음을 그 안에 맴돌게 하고 너희의 길을 가로막는다. 너희의 부모와 민족, 계급이나 집단, 회사나 일, 종교나 스승에 맴도는 너희 모습을 지켜보라. 맛있는 음식이나 귀중한 물건, 돈이나 이성에 맴도는 너희 모습을 지켜보라. 어떤 행동이나 장소를 맴도는 너희 모습을 지켜보라. 닫힌 의식은 너희를 맴돌게 하고 맴도는 동안 너희는 단지 움직이는 것뿐이다. 이런 의식의 맴돔이 영원하다면 너희는 너희의 생명과는 관계없이 이미 죽어있는 것이다. 너희는 더 이상 새로워질 수 없고 나에게 조금이라도 가까이 다가올 수도 없다.
바로 그것이 물질의 진실이다.
물질이란 이미 완전히 죽어있는 것이 아니라 너희 차원에서는 자신의 의식 안에 갇혀 스스로 나올 수 없는 것이다. 닫힌 의식은 나를 부정하는 힘으로부터 오는 것이다. 너희 생각과 감정 안의 불완전함들이, 두려움들이 스스로 모여 이루어진 것이다. 너희가 닫힌 의식으로부터 자유로워지려면 너희 자신을 한계짓지 마라. 너희 자신을 종교나 스승, 깨달음의 이름으로도 한계짓지 마라. 너희 마음은 언제나 너희 현실과 이 우주의 신인 나 사이를 오갈 수 있다. 너희 마음은 어떤 의식에 머무르지 않고 그 속을 여행하는 것이다. 너희가 어떤 의식에 집착하는 것은 너희 기몸과 그 의식이 공명하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 의식의 진실을 통찰한 다음에는 너희 마음이 그것에서 자유로워져야 한다. 너희 마음이 자유로울 때 너희는 무엇이든 할 수 있다. 너희 마음이 의식의 중력에서 자유로울 때 너희는 진실을 볼 수 있다.
-우리가 어떤 의식에 머물 때 그 의식을 스스로 깨기는 어렵습니다. 너희 자신을 지켜보라. 너희가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는가 아니면 멀어지고 있는가? 또는 너희가 어떤 의식에 계속 맴돌고 있는가? 너희가 나에게 가까워지고 있다면 너희는 내게 마음이 열려 있고 스스로 진실을 통찰해서 나에게 이를 수 있다. 또는 나와 너희 현실 사이를 오가고 있다면 너희는 너희 현실을 창조하고 있고 그 속에서 진실을 만나고 있는 것이다. 너희는 진실에 열려 있고 너희 현실로부터 무엇을 받아들이고 무엇을 창조해야 할지 알고 있다. 그렇지만 너희가 어떤 의식에 맴돌고 나에게 가까워지지 않는다면 너희는 아직 나에게 열려있지 않은 것이다. 너희가 어떤 의식에 의지하며 젖먹이처럼 그 의식의 도움을 구하고 있는 것이다. 너희의 종교나 스승도 때로는 너희를 가둘 수 있다. 그들을 통해 너희가 나에게 가까워지지 않는다면, 또는 언제나 그들을 의지해야 한다면 그들이 너희를 가두고 있는 것이다. 많은 이들이 그와 같은 처지에 있다. 그들은 너희에게 일시적인 도움이 될 수 있지만 너희가 그들에만 머문다면 너희는 그 의식의 감옥에 갇혀서 헤어나올 수 없다. 너희가 깨달았다고 믿는 이들에 머무르고 종교를 추종하는 것이 그것이다. 그것은 너희의 마음을 멈추는 것이다.
너희 자신을 관찰하라.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같은 자리를 맴돌고 있는가? 너희가 나에게 열려있는가?
나를 만나는데 누군가에게, 또는 종교에 의지해야 하는가? 너희는 어떤 두려움을 갖고 있는가?
너희가 종교나 스승을 버리지 못하는 것은 어떤 두려움인가? 너희는 이미 온전함을 상기하라. 너희는 이미 충분한 것을 갖고 있고, 어떤 것으로도 상처받지 않는 존재들임을 상기하라. 너희가 두려워해야 할 것들은 없음을 상기하라.
-우리가 훌륭한 스승이라고 믿는 이들에게도 머무르지 않아야 합니까? 그들 곁에 있으면 그들을 따라 당신에게 이르기도 쉽지 않을까요? 마치 달이 지구를 따라 태양을 돌고 있듯이. 어떤 것에도 완전히 멈추지 마라. 위대한 스승들은 너희를 멈추고 맴돌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게 이르도록 너희를 안내하는 이들이다. 그들과 같이 일하는 것이 아니라면 그들에게 오래 머무르는 것 또한 멈춘 것이다. 이를 안다면 너희가 그들에게 머물려고 하지 마라. 그것은 너희의 어린 마음이다. 그것은 너희가 자신이 누구인지 잃어버렸기 때문에 생기는 두려움에 뿌리를 둔 마음이다.
-위대한 스승들 역시 우리를 멈추게 할 수 있습니까?
달이 태양을 가리듯 당신을 가릴 수 있습니까? 그렇다. 깨달음이 온전하지 않으면 너희를 멈추게 할 수 있다. 이는 눈앞의 작은 등불이 멀리 있는 태양보다 밝아보이기 때문이다. 너희 인류의 역사에는 깨달음을 얻은 이들이 많이 있지만 그들로부터 또한 많은 우환이 비롯되었다. 깨달음이란 나에게 이르는 길을 여는 것이다. 깨달음으로부터 많은 이들이 나에게 가까워진다. 하지만 깨달음이 온전하게 전해지지 않으면 그로부터 인류에게 큰 해악을 끼치는 독선적인 집단의식이 생긴다. 깨달음이 나에게 이르는 온전한 길을 벗어나면 곧 바로 깨달음에서 멀어질 것을 두려워하는 무리들이 생기고 그 스승의 이름이나 행적, 관습이나 말에 얽매이게 된다. 그들은 스스로 자신들을 스승에 얽어매고 스승의 행동이나 말에 갇혀버린다.
이것이 깨달음의 우환이다. 이것이 종교의식의 시작이다. 많은 깨달음이 깨달음의 우환에 빠졌고 많은 스승이 또한 깨달음의 우환을 막지 못했다.
-종교가 곧 깨달음의 우환입니까? 그렇다. 종교의 이름으로 행한 일들을 보아라. 그들이 나를 가리고 너희에게 군림하며 의로운 무리들을 박해하고 이교도와 전쟁하는 것을 보아라. 이는 나의 뜻이 아니라 그들의 어둡고 닫힌 의식이 행한 일들이다.
-종교는 모두 잘못된 것입니까? 닫힌 의식이 종교를 만든 것이다. 진리의 길을 잃어버릴 지도 모른다는 의심과 두려움이 울타리를 치고 종교를 만들게 한다. 아무리 큰 깨달음도 종교 안에 들어가면 서서히 그 빛을 잃고 거대한 몸뚱이만 남아서 너희를 끌어당기고 지배한다. 너희의 종교가 수십억의 신도를 가지나 그를 통해 나를 온전히 깨닫는 자는 매우 드물다. 이는 종교의 도그마가 너희를 잘못 인도하는 까닭이다. 종교는 나에게 오는 문을 닫고 지상의 권력을 탐하고 있다. 너희 안에 진실로 나를 구하는 마음이 있다면 그 진실 안에서 나를 구하라.
종교의 울타리를 벗고 모든 이웃에게 마음을 열라. 너희가 종교를 버리지 않으면 나에게 이를 수 없다.
-그럼 그 안의 진리의 말씀들은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앞으로 이 대화들이 너희를 내게 이끌 것이다. 이제 예수와 석가의 말도 평범한 것이 될 것이다. 그 말들에 얽매여서 인생을 허비하지 마라. 너희에게 도움이 되지 않는 것들을 버릴 줄 모르면 너희는 예수와 석가의 종이 될 뿐이다. 너희는 그들에게 집착해 나를 버리는 것이다.
-그럼 이제 이 대화를 따라서 가야 합니까? 모든 일들이 너희를 도울 것이다. 모든 일들이 너희를 내게 이끌 것이다. 그 진실을 통찰하라.
-우리가 항상 당신에게 마음을 열고자 하면 당신은 우리를 도울 건가요? 물론이다.
나는 스스로 돕는 자만을 도울 수 있는 신이다. 너희가 진실을 구하고자 하면 내가 너희를 도울 것이다. 너희가 내게 마음을 열듯이 이웃에게 마음을 열 것이요, 내게 정성을 다 하듯이 이웃을 사랑하라. 너희가 이웃을 돕고자 하면 나에게 도움을 받을 것이요, 이웃에게 사랑을 주고자 하면 나의 사랑을 받을 것이다. 이것이 의로운 이들의 길이며 내게 이르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