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 만에 봄비가 촉촉히 내립니다. 산하가 단비에 더욱 푸르게 짙어졌습니다. 마치 단비를 기다린양 모든 나무들이 비를 흠뻑 먹어 버렸고 온 산하가 생명의 역동감에 넘쳐 납니다. 지구의 순환구도에서 '비'는 매우 중요합니다. 마치 생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거리의 사람들 또한 비를 맞으면서도 생동하는 기운을 느꼈을 것입니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399946
21세기에 접어 든 지금은, 우리가 의식하던 안하던 인류의 의식이 엄청나게 상승하고 있습니다. 마치 많은 사람들이 같은 영화를 보고 나와서 비슷한 줄거리를 말 하듯이, 인류의 미래 소망에 대한 비슷한 염원을 얘기함을 알았습니다. '나' 그리고 '내 가족'이라는 작은 틀에서 벗어나, '이웃' 그리고 '지구'라는 공동체적 의미를 말합니다. 과거엔 '나'와 '내가족'이 모든 것이었고, 성공이란 '나'와 '내가족'이 풍요함을 누리는 것이었습니다. 왜 21세기에 인간들은 공동체적 생각을 공유하는 것일까요?
인류의 진화
인간은 아메바 같은 단세포 동물로 부터, 사람이라는 뛰어난 지적 생명체로 진화해 왔다고 가르칩니다. 과학자들은 인간들의 일부 본능적 행동이 진화의 결과물로 얻어진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예로서 얼마전 신문에 재미있는 기사가 실렸더군요!
여성은 남성의 겨드랑이 냄새로 자기의 배우자에 대한 선호를 선택 한다는군요! 포유로는 주로 밤에 사랑을 하기 때문에 냄새로 이성을 찾던 습관이 남은 것이라고 합니다. 이렇게 본능적인 것은 모두 진화의 산물로 결론내 버리고 우리는 '아하, 그렇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진화의 산물이 아니고, 인간들이 가진 순수한 본능을 잘못 해석한 것입니다. 인간이 동물들에 비해 엄청 뛰어난 존재인 것 같지만, 인간 행위의 95% 이상은 내부에 프로그램된 것을 본능적으로 따르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무언가 무서운 것이 나타나면 두려워 하고, 돌맹이가 날아오면 피하고, 배고프면 식욕을 느끼고, 호감이 가는 이성이 다가오면 성욕을 느끼거나, 자기에게 특별히 끌리는 이성의 냄새로 상대에게 호감을 갖는 등의 행위는 모두 내재된 프로그램에 의해 자동적으로 작동되어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한 것으로서, 만약 이런 프로그램이 없었다면 인간들은 서로간에 의사소통을 하는데도 엄청난 어려움에 직면 했을것 입니다. 이것은 진화론에서 말하는 것처럼 생존과정에서 얻어진 습득 결과가 아닌, 지적인 설계에 의해 정밀하게 프로그램된 것입니다. 그렇다면 왜 이런 본능적인 프로그램이 필요 했을까요?
본능 프로그램
그 이유는 지구라는 행성의 차원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지구는 분명히 삼차원에 존재합니다. 우리의 근본은 상위 차원의 영이고 지구에 들어와 삼차원의 우주복을 입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몸은 분명히 삼차원에 가장 잘 적응하도록 설계된 우주복입니다. 우리 몸이 삼차원에서 생존하려면 삼차원에 자동적으로 적응할 프로그램이 필요합니다. 상위의 영이 삼차원의 몸을 일일이 조정하는 것은 엄청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은 달나라에 간 우주선에 탑승한 인간에 비유됩니다. 인간은 우주선 안에 앉아 달나라의 환경에 직접 맞닥 뜨리지 않고도 달에서의 작업을 완료할 수 있습니다. 물론 지금은 우주선에 대한 설계가 덜 진보해서 인간들이 거의 조정하지만, 얼마 후에는 자동화된 우주선이 알아서 척척 일을 진행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본향인 지구를 그리워 해 지구로 다시 돌아 오려는 본능이 있습니다. 만약 어느 우주인이 달나라에 미련을 버리지 못해 그곳에서 머뭇거리며 우주선에 탑승하지 않으면 그는 그곳에 미아로 버려 질 것입니다.
http://www.amitgoswami.org/ko/consciousness-quantum-physics/
의식의 상승
우리 인간 몸은 고도로 자동화 프로그램된 시스템이라서 인간 뇌에 저장된 기억과 감각들이 마치 자신이 스스로 존재한 것인양 착각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인간은 많은 것을 '관념화' 할 수 있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랑'이라는 본능적 프로그램을 인간들은 거룩한 개념으로 승화사켜 관념화 해 버렸고, 우리 소득의 많은 부분을 먹는 것에 투자하지만 그것은 즐거움으로 역시 승화시켰습니다.
이처럼 스스로 존재 하는것 같은 우리의 살아 있는 몸을 영혼이라고 부릅니다. 우리 영혼은 내부에 있는 진정한 주인인 '영'(참나)을 모릅니다. 왜 모를까요? 우리의 주인인 영이 상위차원에서 삼차원으로 들어오려면 '진동수'를 줄여야만 합니다. 따라서 삼차원에 맞는 진동은 상위차원의 진동(기억)을 잊어 버리게 됩니다. 따라서 우리의 영(참나)이 상위차원의 기억을 상실한 동안 우리의 영혼은 그 자신이 주인으로 알게 됩니다.
그러나 지구의 진동수가 늘어나고 우주의 외부적 영향력이 증대됨에 따라 우리의 영(참나)은 서서히 깨어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인류의 의식 상승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은 의식상승이 폭발하고 있는데 우리가 알던 모르던 우리 모두는 이런 영향력 아래 놓여 있고, 내 속사람(영)을 조금만 의식해도 '의식의 상승'이 순간적으로 높아져 버립니다.
그래서 참나를 찾기 시작하면 마치 기적처럼 같은 생각을 공유하는 사람들이 나타나서 같은 말을 하는 경우가 늘어만 갑니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을 통한 '의식의 체험'을 꾸준하게 겪게 됩니다. 이것은 매우 놀라운 것으로 이 체험을 통해 우주의 진리를 깨달아 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왔고, 결국은 하나의 근원으로 돌아가야 함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돌아가야 할 근원에 도달하려면 우리의 의식을 상승시켜 더 높은 차원에 진입해야 함을 압니다.
의식의 정체
이제 내적 영(참나)을 통한 의식의 상승이 있고 여러가지 체험을 통해 깨달음을 얻어가는 중에, 이제는 특별하고 가슴 설레는 체험이 어느 정도 이루어 지면, 내적 체험은 서서히 줄어들게 됩니다. 이때 내면에 집중하지 않으면 의식의 정체 현상이 나타납니다. 발전이 나타나지 않는 것입니다.
이때가 중요한 때 입니다. 이때는 선택의 순간입니다. 의식 상승의 한계를 넘어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기로에 멈추어 서는 것입니다. 이런 작은 깨달음의 한계에서 조금씩 나아갈 것인가 아니면 더 큰 도약을 이룰 것인가 하는것 입니다. 더 큰 도약은 빛의 의식에 도달하는 것입니다. 이때 중요한 것을 결정해야만 하는 상황이 닥칩니다. 그것이 무엇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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