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삼론종
삼론종이란 인도 승려인 나가르주나가 지은 "중론"과 "십이문론" 및
나가르주나의 제자인 데바가 지은 "백론"을 주요 경전으로 모아 성립된
종파이다. 이 종파는 중국 남북조시대 말기에 성립되어 수나라 때 크게
번창하였으며, 같은 시기에 고구려와 백제 및 일본에도 상당히 퍼져 있었다.
고구려나 백제에서 삼론종이 얼마나 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렇지만 중국 삼론종의 집대성자가 요동 태생의 고구려 사람 승랑(일명
도랑)이고 삼론종을 일본 승려에게 가르쳐 일본 삼론종의 시조가 된 이도
고구려의 혜관이란 사실로 미루어보아 삼론종은 고구려 내부에도 상당히 퍼져
있었을 것이다. 당시 국가로부터 공인을 받지 않고 외국에 포교를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는데, 국가의 공인을 받을 정도였으니 상당히 성행하는
종파였다고 볼 수 있는 탓이다.
중국의 경우 512 년에 양무제가 승려 열 명을 선발하여 승랑에게 불법을
배우도록 했는데, 이는 당시 고구려 불교계의 사상적 깊이를 가늠하게 한다.
더구나 양무제가 선발한 승려들 가운데는 이미 승정이라는 최고위 승직에 오른
지적 같은 이도 포함되어 있었으므로 승랑의 비중을 짐작하고도 남음이 있다.
일본의 경우에도 고구려의 혜관이 건너가 삼론학을 가르친 이래 고구려의
도등 등이 계속 초빙을 받아 삼론학을 강론했다.
그러나 이런 유행은 수나라나 고구려, 백제나 일본 할 것 없이 일정계층에
한정된 것이었으며, 남북조와 그 뒤 수나라에서 가장 기본적인 사회철학은
여전히 유학이었다. 또한 후한 때 만들어진 도가풍의 오두미교를 신봉하는
경우도 많았다.
고구려에서도 불교를 공인한 왕실과 일부 지식인층 및 승려층이 불교계를
이끌고 있었을 뿐이었다. 불교는 아직 신흥종교였으며, 대부분의 지식인과
대중들은 기존의 전통적 사고체계와 신앙을 고수하고 있었다. 불교는 일부
세력의 의도에 휘말려 급격히 수입되었을 따름이다.
종족연맹을 벗어나 더욱 강력한 단일집권체제를 세우려던 고구려의
왕족에게는 새로운 질서를 뒷받침할 철학이 필요했다. 고구려의 왕족이 그런
배경에서 찾아낸 탁월한 사상이 바로 불교였다. 고구려뿐만 아니라 백제에서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그들은 이미 오랜 전통을 자랑하며 인간의 근본 이상과
일치하는 뛰어난 사상을 갖추고 있었지만, 왕족을 비롯한 소수층은 자신들의
권력독점 욕망을 실현하기 위해 무언가 다른 사상을 필요로 하고 있었다.
고구려나 백제에서 불교를 공인한 세력은 주로 왕족이었는데, 이들은 모두
왕권 강화의 상징으로서 불교를 공인했다. 그러나 그는 불교를 공인시키기
위해 이차돈을 사형시켜야 할 정도로 큰 어려움을 겪어야 했다.
이렇듯 불교의 수입은 왕권 강화라는 측면과 기존 연맹체제의 고수라는
측면의 대립을 상징하는 사상사적 쟁점이었다. 고구려 출신의 탁월한
불교이론가인 승랑이 고구려에서 그 꿈을 펴보지 못하고 중국으로 활동무대를
옮겼던 것은 이런 대립이 얼마나 치열했으며 그 속에서 불교가 받은 압박이
어느 정도였는지를 잘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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