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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영고,동맹 등에서 확인되는 제사의식과 하늘사상...그리고 오행

이슬 (새벽이슬, 이슬의꿈,이슬과길) 2011. 3. 30. 17:32

  영고,동맹 등에서 확인되는 제사의식과 하늘사상 그리고 오행.....

  복잡한 계보에도 불구하고 삼국은 모두 고조선의 후예들이 세운
국가였다. 또 그들 국가는 모두 고조선과 같은 거대한 연맹을 주도적으로
세우기 위해 치열한 경쟁관계를 맺고 있었다. 그 과정에서 삼국은 나름대로
역량을 키우는 데 주력했고, 그 결과 문화적,사상적 측면에서도 큰
변화가 일어나고 있었다.
  그들은 새로운 사상과 문화를 받아들여 통합의 역량을 키우려고 했다.
불교나 도교 및 유학을 받아들인 것도 그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삼국 각 나라가 가장 먼저 발전시켜내려고 한 것은 오로지 한 가지였다.
그것은 바로 삼국의 뿌리가 되는 고조선의 하늘사상과 하늘숭배 문화를
발전적으로 계승하는 일이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삼국사기"에도 그런 내용의 기록이 자주 보이며, 중국
역사서에도 비슷한 기록이 자주 보이며, 중국 역사서에도 비슷한 기록이
나타난다. "고구려와 신라에는 도리에 맞지 않게 세운 사당이 있다"고 서술한
기록들이 바로 그런 것이다. 기마종족과 계보가 달랐던 한족의 역사가들은
오만방자하게도 하늘사상에 뿌리를 둔 우리 겨레의 문화적,사회적 전통을
천박하고 무식한 행위로 평가할 따름이었다.

    그런데 "삼국사기"의 책임편찬자인 김부식도 그런 기록을 그대로 인용했다.
"삼국사기" '잡지' '제사'편에 보이는 내용이 바로 그것이다.

  "북사"에 이르기를 '고구려는 늘 10월달(우리 겨레는 원래 봄을 계절의
출발로 삼지 않고 겨울을 출발로 삼았기에 10월이 첫달이었으며, 12월은 세
번째 달이라는 뜻에서 섣달이라 불렀다)에 제사를 지내는데 도리에 맞지 않는
귀신집이 많다. 신을 모시는 두 개의 사당이 있는데, 하나는 부여신이라 하여
나무로 조각한 여인네의 우상을 받들었고, 다른 하나는 고등신이라 하여 시조
부여신의 아들을 받들었다. 이 두 곳에 모두 관청을 설치하고 관원을 보내어
지킨다'고 했다.

  "삼국사기"에는 고구려와 백제의 제사의례에 대한 기록이 서너 대목 더
있지만, 그 내용에는 큰 차이점이 없다. 차이점이 있다면 백제의 조상신
이름이 구태로서 신 이름이 다를 따름이다.
  김부식이 부정적으로 평가한 기마종족의 하늘숭배는 이처럼 조상신에 대한
숭배와 일치하는 것이었다. 그러므로 이 기록을 통해 우리는 고구려와 백제가
모두 자신들의 조상신을 받듦으로써 삼국 공통의 전통을 존중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조상들이 모시던 하늘님도 여전히 숭배의 대상이었으며, 이 또한
동부여의 영고나 고구려의 동맹 등에서 확인이 된다. 신라의 경우에도 그런
의식에서 예외는 아니었다.

  하늘과 조상신에 대한 숭배의식뿐만 아니라 삼국은 사상적으로도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들은 모두 기자계 이후 형성된 오행사상을 중시했다. 즉
삼국은 제사의식을 비롯한 사상적 측면에서 공통의 기반을 가지고 경쟁을
시작했던 것이다.
  오행사상이란 기자의 홍범사상을 이어받은 것으로서 모든 사물을 물과 불과
나무와 쇠와 흙의 다섯 가지 요소로 설명하는 사상이다. 오행사상은
기본요소설로부터 시작하는 이론이지만 다른 분야에도 적용이 되었는데,
방위를 나타낼 경우 동서남북과 함께 중앙을 포함하여 '오방'이라 했다. 또
색깔을 나타낼 경우 풀색, 노을색, 붉은색, 흰색, 검은색을 들어 '오색'이라
했고, 소리에서는 궁상각치우의 '오음'을 내놓았으며, 맛에서는 시고 쓰고 달고
맵고 짠맛을 들어 '오미'라고 했다. 뿐만 아니라 별을 관찰할 경우에도 각
요소에 부합하는 수성, 화성, 목성, 금성, 토성을 기본 행성으로 설정했다.
  삼국에 이런 오행사상이 널리 퍼져 있었음은 여러 곳에서 확인할 수 있다.
예컨대 "삼국사기" '잡지' '관직'편에서는 "북사"를 인용해서 백제의 관직을
설명하는데, "서울에는 방을 두고 방마다 오부로 나누었으며 이를 상부, 전부,
중부, 하부, 후부라 했다. 또 부에는 다섯 개의 항이 있어서 평민들이
살았으며, 부는 군사 500 명을 거느렸다"고 했다.

  이 기록에 따르면 백제의 모든 지방조직은 다섯이라는 숫자에 따라 틀이
짜여 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고구려의 다섯 부족 연맹체계나 5부
욕살체계와도 일맥상통하는 것으로, 이런 조직체계는 고구려나 백제가
오행사상과 깊이 관련되어 있었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북사"의 다른 기록에서 "백제에는 오행사상이 널리 퍼져
있다"고 한 부분이나, "삼국지" '위지' '종회전'에서 왕필이 "주역"을
해석하면서 고구려 역학자들의 오행사상을 인용하였다고 한 부분도 모두
오행사상이 백제나 고구려에 널리 퍼져 있었음을 간접적으로 입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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