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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도가의 서두는 잘 보았는데 결말은 영 아니다...설마 빈이도 이런 경향이 있는 것은 아니겠지?

이슬 (새벽이슬, 이슬의꿈,이슬과길) 2011. 3. 30. 11:51

도교 (2)
무위 처세관, 신선 사상… 영성 갈급한 현대인에 영향

철학사상으로서의 도가 사상과 종교로서의 도교는 다르다는 점에 대해서는 앞서 밝힌 바가 있다. 도가 사상은 선진 시대 노자와 장자의 가르침에서 비롯된 형이상학적인 철학사상인 반면, 도교는 상고 시대 중국 사회 전반에 퍼져 있었던 토착적인 민속 신앙, 신선사상, 점술에다가 도가 사상과 유교와 불교의 요소까지 모두 포함한 복합적인 형태의 종교라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뿌리에 있어서 어느 정도 상당한 수준의 연관성을 갖는 것은 사실이다. 도가 사상이 도교에 미친 정신적, 사상적 영향력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분명하게 나타난다.

동한(東漢) 말엽 도교를 창도한 장도릉(張道陵)이 노자를 교조(敎祖)로 추존(追尊)하고 노자가 지은 '도덕경'의 오천 문장을 신도들이 외우고 익혀야 할 경전으로 받아들임으로써 노자의 사상은 도교의 교리를 형성하는 기초가 되었다. 한국에서는 상고시대 이래의 신선사상이 삼국시대에 이르러 도가사상과 결합함으로써 풍류를 숭상하는 기풍을 조성하는 데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고, 조선시대에 이르러서 도가 사상은 산림을 찾아 신선처럼 은둔하여 유유자적하며 살고자 하는 선비들의 정신적 지주가 되었다고 평가된다.

도가 사상의 특징은 실용주의적인 유교와는 달리 현실세계에 대한 신비주의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이론에 있다. 유교가 상대적으로 중국의 도덕과 정치 체제에 관심을 두었다고 하면 도가 사상은 보다 개인적이고 형이상학적인 부분에 관심을 나타냈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으로 도와 덕에 대한 노자의 사상에서 이러한 점이 잘 드러난다. 노자에게 도(道)란 자연의 이치, 우주의 생성과 소멸의 원리를 의미한다. 모든 사건과 사물의 배후에 숨어 만물을 만물 되게 하는 근원이요 천하 만물을 초월하지만 동시에 천하 만물 속에 깃들어 작용하는 것이 바로 도이다. 그것은 무엇인지 알 수 없으며 말로 무어라 이름할 수 없다. 그 본체로 말하면 하등의 사심도, 억지도, 고집도, 작위적인 행동도 없는 것을 뜻하는 무위(無爲)이면서 그 작용은 활동적이다.

도가 우주 자연의 이치를 지배하는 것이라면 덕(德)이란 우주 자연의 이치 곧 하늘의 순리에 따라 사는 것으로 이해된다. 자연을 이상화시킨 대표적인 사상가로서 노자는 자연 법칙에 순응하여 사는 것에서 도덕의 근거를 찾는다. 이른 바 무위자연(無爲自然)이 그것이다. 이는 동양 철학의 공통된 특징이기도 한데, 하늘(天=自然)에서 모든 가치와 규범의 근원을 찾고 그러한 하늘의 이치에 순응하여 사는 삶을 이상적인 것으로 높이 평가하는 것이 그것이다. 인간과 자연질서가 통일적으로 융합되어야 한다는 사상은 중국사상의 고유한 특징이며 도가가 특히 이 이론을 정교하게 다듬었다. 공자는 인문주의의 입장에서 하늘(天)을 해석하여 주나라의 봉건 제도를 정당화하였다고 한다면, 노자는 자연주의의 입장에서 하늘(天)을 해석하여 서민 대중을 옹호하고 지배계층을 견제하였다고 볼 수 있다.

노자에 따르면, 모든 존재와 만물은 근본적으로 하나요 절대 평등하기 때문에 일체의 차별과 대립은 사람들이 전체적인 시야를 갖지 못하고 부분적인 진리를 절대적으로 간주할 때만 일어난다. 그래서 일체의 비교, 차별, 구별에 매여서는 안 된다는 것이 노자의 자연주의 인생론이다. 인위적인 것, 상대적인 것, 우연적인 것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이요, 상대적인 가치의 망상과 수렁에서 헤어나야 한다는 것이다. 노자의 이러한 절대 평등의 가치관은 장자에게 더욱 강조되어 계승된다. "도의 관점에서 세상을 보게 되면 이 세상에서 귀하고 천한 것의 구분이 없다"는 말이나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의 다리는 짧다. 그러나 이것을 균등하게 하려고 학의 다리를 잘라서 오리의 다리에 붙일 필요는 없다. 각각 절대 평등하다고 보아야 한다"는 말에서 통일성과 조화와 일치의 삶을 추구하는 도가 사상의 특징을 잘 엿볼 수 있다.

절대 평등에 대한 이러한 의식은 무위(無爲)의 수행법과 자연스럽게 연결된다. 여기서 무위는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작위와 억지를 부리지 않고 인공의 힘을 가하지 않은 자연스런 행위를 뜻한다. 이는 곧 개인적인 감정과 의지를 죽이고 사특하고 간교한 생각을 끊어버리는 무사(無私)와 탐하는 마음을 끊어버리고 스스로 만족할 줄 아는 무욕(無慾), 큰 지혜를 얻기 위하여 작은 지식을 버리는 무지(無知)를 함축한다. 이렇듯 비움과 버림의 수행법, 이른 바 무의 심법은 도가 사상에서 덕성을 함양하고 실천하는 근간이요 토대가 된다. 이 점에서 도가 사상은 불교 특히 선사상과 유사성을 보인다. 인도의 불교가 중국으로 넘어오면서 도가 사상과 융합함으로써 중국 특유의 불교 운동이 일어난 것은 이러한 유사성에 근거한다.

그러나 도교에 와서 이러한 무위의 처세관은 신선사상(神仙思想)에 도취되어 속세를 피해서 입산 수도하는 이른바 도사(道士)라 칭하는 자들에게서 변질된 형태로 나타나게 되었다. 신비주의적이고 미신적인 도술이라 할 수 있는 각종의 수련법이 그것인데, 그 중에서 태식(胎息)이니 단전(丹田) 호흡법이니 하는 기의 단련이 대표적이다. 더불어 음식과 보약으로 불로장생하고 양기(陽氣) 즉 성 능력(性 能力)을 증진하려는 것 역시 도술의 한 단면이다. 요즘에는 '기의 과학적 에너지화' 라는 풍조에 힘입어 단전법이니 비양법(飛揚法)이니 하는 것으로 도술이 성행되고 있는 현실을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실상 이들은 모두 옛날부터 있어온 도교적 수련에 뿌리는 두는 것으로 이러한 수련법이란 것이 결국 사람들을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혼미케 하는 것임을 간과해서는 안 될 것이다.

증산도니 대순진리회니 하는 수련을 표방한 종교 단체들의 실상 역시 도교의 기만적인 자기최면의 사술이라는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다. 그런데 소위 민족 종교라는 이름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미혹하는지 모르겠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에 자기의 영성을 깨우치려는 욕구는 끊임없이 일어난다. 요즘과 같은 물질중심적인 생활 환경에서부터 잃어버린 자기를 찾으려고 하는 몸부림에 찬 사람들일수록 이런 것에 잘 미혹된다. 학력도 높고 사회적 지위나 경제력의 수준도 높은 계층의 사람들에게서 영성에 대한 갈급함이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에서 이들을 복음의 빛 가운데로 인도하여 참된 영적 자기 발견과 성숙이 이루어지도록 인도할 필요가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게 요청된다.

/양승렬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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