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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천국에 살 수 있는 원리

이슬 (새벽이슬, 이슬의꿈,이슬과길) 2011. 4. 7. 14:33

 

 

 

신에 대한 유일한 찬미는 행복해지는 것이다. 말은 필요치 않다. - 사실

그것은 말이 될 수 없다. 말은 너무 헛되고 공허하다. 지적으로가 아니라

존재적으로 신을 찬미해야 한다. 그대 존재의 모든 세포가 기쁨으로

진동해야 한다. 그대 존재의 모든 세포가 기도 속에서 춤을 추어야 한다.

 

 

사실 그대는 기도 그 자체가 된다. 오직 그때 그대는 기도 속에 있다. 그 순간

아무 말로 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말하게 된다. 교회나 예배당, 혹은 사원에

갈 필요가 없다. 그때 그대는 어디에 있든지 기쁨으로 가득 찬다. - 신이

그대를 선택해서 존재하게 했다는, 신이 그대를 창조했다는, 그

단순한 이유 만으로 차오르는 기쁨.

 

 

신이 그대에게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볼 수 있는, 이 신비스러운

존재를 알 수 있는, 그 일부가 될 수 있는, 그것을 마시고 그것

으로 취할 수 있는, 기회를 준 것에 대한 기쁨.

 

말은 매우 조악한 것이다. 그것들은 도로 땅으로 떨어진다. 땅을 벗어날 수 없다.

오직 고요한 기쁨 만이 궁극의 실체를 꿰뚫을 수 있다.

 

그러므로 기뻐하라. 행복해 하라. 그리고 기도하고 싶은 생각이 들 때마다

춤추고 노래하라. 신에 대해서는 잊어 버려라. 기도는 신에게 인사를 하거나

신과 대화를 나누는 문제가 아니다. - 그것은 모두 넌센스이다. 신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예>라고 말하는 것 외에 다른 방법이 있는가? 그리고 그것은 그대의 춤으로만

말할 수 있다. 그것은 어떠한 말로도 말할 수 없다. 말은 너무나 불충분하다.

한계가 있다. 말은 세속에서나 사용할 수 있다. 그대가 다른 세계, 초월의 세계

속으로 들어가기 시작할 때, 말은 절대로 불필요하다.

 

 

 

천국에서

살고 있는 것처럼

이 지구에서 살아야 한다.

그때 천국으로 들어갈 수 있다.

 

천국은,

이미 천국에 있다고

믿는 사람만이 들어갈 수 있다.

그 외에는 아무도 들어가지 못한다.

 

이미

열락을 누려온 자들 만이

천국의 열락을 누릴 자격이 있다.

 

 

이 지구, 이 삶은, 깨어있고 민감하고 조화롭게 되어서 어디에서든지 그대가 기쁨을

느낄 수 있고, 존재의 춤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한, 하나의 기회이다. - 느낄

뿐만 아니라 그 춤의 일부가 되어야 한다. 그대 자신이 점점 해체되어 존재의 춤 속으로

녹아 들어야 한다.

 

조금이라도 노래할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기쁨을 나눌 수 있다면,

조금이라도 자신의 존재를 표현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사실 그것은 충분한 것 이상이다.

 

 


우리는 매우 불행하다. 우리는 아무 것도 나누지 않는다. 이것이 인간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큰 불행이다. 그런데 그것이 모든 인류에게 발생해 왔다. 우리는 불행해지는

방법으로 키워지고 있다. 무엇인가를 주더라도 우리는 사업상의 조건으로만 준다.

 

 

그것은 나누는 것이 아니다. 우리는 더 많이 얻기 위해서만 준다. 그것은 항상

거래이다. 진정으로 주는 것이 아니다. 가능한 한 진심으로 주라. 그것이

내가 말하는 조금이라도 노래부르는 것이다.

 

노래를 억누르지 말라. 표현하라. 아침에 노래하는 새처럼. 새는 누가 듣는지

듣는지 신경쓰지 않는다. 청중에 대해 상관하지 않는다. 그들은 무엇인가 보답

을 얻기 위해 노래하지 않는다. 단순히 기쁘기 때문에 노래한다. 밤이 끝났다.

태양이 떠오른다. 아침이 다시 시작되고 있다. 그리하여 새들은 모두 노래부른다.

모두 춤을 춘다.

 

 

이것이

진짜 사는 것이다.

- 순간순간이 하나의 기쁨이다.

삶을 즐거워하고

그대에게 다가오는 모든 것들과 함께 나누어라.

나무와 함께, 동물과 함께, 바위와

함께 나누어라.

 

나눔

그대의 삶이 된다면,

그대는 구도자이다.

노래가 그대의 삶이 된다면,

그대는 구도자이다.

구도는 결코 포기가 아니다.

기뻐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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