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네 탓'과 '내 탓'의 차이
카톨릭의 고백송에는 '네 탓'이 없습니다. 오직 '내 탓'이 있을 뿐입니다. 일체유심조 一切唯心造 ! 불가에서도 모든 것이 제 마음 탓이라 가르칩니다'
'네 탓'과 '내 탓'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글자에서 한 획의 차이 밖에 없지만 그 품은 깊은 뜻은 밤 하늘의 무수한 별자리 사이만큼 서로가 아주 먼 것입니다. 그런데, '네 것'과 '내 것'을 구분하지 못하면 '네 탓'과 '내 탓'을 구별하지 못 합니다. '네 탓'은 물론 '내 탓'도 모두 '네 탓'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 책임도 항상 그럴듯한 핑게와 변명 속에 숨어버리고 언제나 남을 가리키는 손가락의 표시만 길게 남는 법입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가장 하기 어려운 말이 "내가 잘못했습니다"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이 말을 분명하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신뢰와 존경을 받을만한 인격자입니다'
'내 탓'이요 '내 탓'이요. 오직 '내 탓'이요. '네 탓'은 '내 탓'이요 '내 탓' 또한 '내 탓'입니다 '네 탓' 속에서 '내 탓'을 발견할줄 아는 인격은 참으로 아름다운 마음 입니다. 올 곧은 양심 입니다. 서리를 맞고난 후에야 제 몫을 다 한다하여 상강송霜降松이라 부르는 열매가 있습니다 바로 '잣'이라는 열매의 이름입니다. 우리 인생도 '잣'의 성질로 일상 속에서 오직 '내 탓'을 자각하는 고귀한 인품을 지녔으면 하는 마음입니다.
2. 버리고 비워야 채울 것이 있다.
불가佛家에서 두타행頭陀行이라는 수행생활이 있다. 두타는 범어梵語 dhuta를 음역한 것인데 우리말로 털어 버린다는 뜻이다.
이승의 온갖 번뇌와 근심 걱정을 모두 털어버리고 입는 것, 먹는 것, 자는 것에 탐착하지 아니하고 오로지 불교의 수행에 전념하는 수행살활이라고 한다. 그런데, 두타행이라는 출가 수행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사항을 죽을 때까지 지켜야 한다고 한다.
첫째, 출가수행자는 걸식을 해야하고
둘째, 분소의糞掃衣하 해서 누덕누덕 기운 누더기 옷을 입어야 하고
셋째, 나무 밑에서 눕거나 자야하고
네째. 병이 났을때는 진기약陳棄藥(짐승의 대,소변으로 만든 약)을 써야 한다고 한다.
지극히 간소한 최저한의 의식주 생활이다.
이같은 최저한의 간소한 생활을 통하여 초대한의 진리를 구현하려는 불가의 수행은 해탈의 최고 경지에 이르려 했던 석가모니가 취했던 두타행의 정신이다.
종교적으로 두타라는 고행을 통하여 모든 번뇌와 근심 걱정을 털어버리고 초연의 경지에서 흐트러지지 아니하는 몸가짐을 갖는다는 것, 참으로 철저한 교법의 계율이다.
오늘날 호의호식으로 잘먹고 잘 싸고 하고 싶은 것 다 하면서도 일상생활에 불평불만으로 가득한 우리들의 경망스런 행동거지가 참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막막한 이 세상에서 시은施恩의 적정처寂靜處는 어디 없을까 긴장을 느끼지 못하는 인간사가 참으로 덧없고 부끄러울뿐이다.
한 해의 끄트머리 12월의 중반에서 조용히 지나 온 날을 뒤돌아 본다. 때로는 쓸어지고 넘어지면서 정신없이 달려 온 시간의 연속이다. 좋았던 일, 나뻣던 일로 얼룩진 한 해가 이제 저물어 가고 있다. 뭔가 아쉬움을 느끼게하는 속절없이 흘러간 세월이 마치 파노라마처럼 생각을 스쳐지난다.
지나간 시간들이 담긴 시간상자를 조용히 열어 본다 잠시 잃어버렸던 것, 또는 버리기 아까워 그대로 방치했던 쓸모없는 것들로 가득차 있다. 하나 둘, 들추어 보면 모두 버려야 할 것들이다. 그런데 버리지 못하고 있다 뼈를 녹이는 아픔이나 슬픔을 견디며 살았던 힘들었던 시간의 잔해가 수북히 쌓여있다 생사의 경계를 넘나들며 간절히 살기를 기원했던 간곡한 기도 같은 것들도 그대로 고스란이 담겨 있다. 그러나 이들과는 정 반대로 가슴을 따뜻하게 덥히는 아름다운 추억들도 담겨있다. 행복이라는 고운 무지개 꿈도 물론 있다.
그러나 이제 모두 버려야 한다 이런 것 저런 것 모두를 버려야 한다 차마 버리기 아까움, 아쉬움 할 것 없이 모두 버리고 시간의 상자를 텅텅 비워야 한다 모두 버리고 마음에 긴 성애를 닦으며 모두 비워진 텅빈 상자 속으로 낯선시간에 또 닥쳐야 할 새로운 운명적인 것들을 담아야 한다. 진경산수 한 폭 그림 속의 적멸의 여백 같은 독야청청한 곳에 무엇을 처음으로 담아야할 것인지 곰곰이 생각해 본다. 심심深心의 정중동을 아는 천문天文의 깊이를 깨달아야 할 시詩를 먼저 놓아야 할까? 온유한 사색과 서정이 가득한 클래식음악을 먼저 넣을까? 인간적인 조화와 화목함이 어우러지는 내 사랑하는 가족의 무궁한 행복을 염원하는 기원을 먼저 담아야 할까?
부질없이 살아버린 날들이 앞으로 살아가야할 날들 보다 훨씬 많은 걸 생각하니 새삼스레 허무감에 휘청거리게 된다. 그동안 짧지 않은 세월을 살았으니 앞으로는 후회없는 여생을 살아야겠다. 할 수만 있다면, 오래 살아 은밀한 뜰을 가꾸고 싶다. 진공묘유眞空妙有 ! 버릴 것들 모두 아낌없이 버리고, 텅빈 그 속에 무한하고 마음 풍성한 그 무엇을 담을 것인가에 대하여 곰곰이 생각해 본다. 마음을 흐트려 놓으면서 어지럽히는 문명의 소리와 잡념을 멀리하고 마음의 소리에 귀 기우려 본다. 곧 관觀이다. 마음을 정진하는 자작자수自作自受! 내 나이나 분수 밖의 요구나 욕망이 아닌 나의 진정한 소유가 과연 무엇이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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