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대자 ...그리고 완전소멸을 꿈꾸며

오욕 칠정 사성제...

이슬 (새벽이슬, 이슬의꿈,이슬과길) 2012. 6. 3. 14: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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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욕칠정(五慾七情)이란?

사람의 다섯 가지 욕심와 일곱가지 감정.

 


오욕(五慾):1.재물욕(財物慾)·2.명예욕(名譽慾)·3.식욕(食慾)·

          4.수면욕(睡眠慾)·5.색욕(色慾),

칠정(七情):1.기쁨(희喜)·2.분노(노怒)· 3슬픔(애哀)·4.즐거움

         (낙樂)·5.사랑(애愛)·6.증오(오惡)·의욕(욕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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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苦集滅道
 무고집멸도


<옮김>
 고와 집과 멸과 도도 없다.


<풀이>
 지혜의 눈으로 우리 인생을 관찰해 볼 때 삶의 근본이라고 하는
몸과 마음은 텅 비어 아무것도 없는데, 그 몸과 마음을 의지하여
일어나는 온갖 고통은 아예 있을 수 없다. 따라서 그 고의 원인도,
 고가 소멸된 경지도 고를 소멸하는 방법도 있을 수 없다.


<해설>
 여기서는 "고집멸도"의 사성제(四聖諦)를 부정하는 대목입니다.
사성제는 불교의 중요한 근본 교리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성도 후
맨 처음으로 오랜 세월에 걸쳐 사성제를 설하셨습니다.

 첫째 항목인 고제(苦諦)는 우리의 인생은 괴로움으로 충만되어 있
 다는 견해입니다. 불교는 고에서 출발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
 큼 고의 인식은 중요합니다.

 고의 대표는 생로병사의 사고(四苦)입니다. 생로병사는 누구나 겪
 는 피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태어나서 늙고 병들어 죽는 과정은
인간이면 누구나 겪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로병사의 사고에
 관해서는 체념해 버리는 수가 많습니다.

 기본적인 사고에다 다시 네 가지 고통을 더하여 팔고(八苦)라고
합니다. 그 네 가지는 애별리고(愛別離苦), 원증회고(怨憎會苦),
구부득고(求不得苦), 오온성고(五蘊盛苦)입니다.

 첫째 애별리고는, 사랑하는 사람이나 사랑하는 것과 헤어짐으로써
 괴로운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사랑하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것
 을 모두 포함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자신은 대통령이 좋은데 그것을 내놓아야 하는 경우도
애별리고 입니다.
 자신이 애착하는 모든 것이 자기 자신과 멀어지는 상황이 되면 고
 통스러운 것입니다. 인간은 애착심이 강하므로 애별리고를 후 사고
 중 첫째에 둔 것입니다.

 둘째 원증회고는, 자기가 싫어하는 것과 만나서 괴로운 것을 말합
 니다. 미운 사람과 함께 있거나 만나게 되면 괴로운 것입니다. 원
 증회고는 사람의 관계 뿐 아니라 넓은 의미로 자기가 하기 싫은 일
 을 하는 것도 여기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자기는 반장이 하기 싫은데 기어이 맡아야 하는 경우도
 원증회고입니다.

 셋째 구부득고는, 자기가 구하고자 하는데 얻어지지 않는 데서 괴
 로운 것을 말합니다. 구부득고는 자신이 필요로 하는 일들이 이루
 어지지 않는 상황은 모두 여기에 해당됩니다.
 예를 들어 자녀를 좋은 대학에 보내고 싶은데 뜻대로 안 된다든지,
 공부한 것을 잊어버리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뜻대로 되지 않는 경
 우도 모두 구부득고입니다.

 넷째, 오온성고는 몸과 마음 그 자체가 하나의 고통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갑자기 삶이 귀찮아질 때 자신의 몸과 마음이 싫어지는
것이 바로 오온성고입니다. 오온이 치성해지는 현상은 모두 오온성
 고에 해당합니다.

 이상의 여덟 가지 고통 이외에도 고의 범주는 상당히 넓습니다.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는 갖가지 문제에서부터 작게는 개인 문제에
이르기까지 그 범위는 대단히 광범위한 것입니다.

 사성제의 두번째 항목인 집제(集諦)는 고의 원인이 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집" 때문에 "고"가 생기는 것입니다. "집"은 '모인다
 '는 뜻입니다. 모인다는 것은 곧 관계를 맺는다는 것입니다. 세상
 의 모든 문제는 모여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독립되어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노사의 문제도
 노와 사가 모여 있기 때문에 문제가 생기는 것입니다. 두 손바닥이
 만나야 소리가 나듯이, 하나만 있으면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부부 간에도 약속을 지키지 않으면 괴로운 것입니다.
그것은 부부가 모여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자신과 관
 계가 없으면 아무런 괴로움이 발생하지 않는 것입니다.
 우리의 육신이 병들어 괴로운 것도 지.수.화.풍의 사대가 결합해
있기 때문입니다. 육신은 하나로 독립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은 많은 세포가 결합되어 있는 것입니다. 새포가 관계에서 떨어
 지려고 하는 것이 병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이처럼 "고"의 원인은 모여서 관계를 맺는 것에서 출발함을 이해
 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고"의 원인인 "집'에 대한 명확한 이해는
"고"를 제거하는 한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사성제의 세번째 항목인 멸제(滅諦)는 괴로움이 소멸된 것을 말합
 니다. 모든 인간 행위의 목적은 이고득락(離苦得樂)에 있다고 말합
 니다. 즉, 고통을 떠나 즐거움을 얻는 일은 불교의 목적이자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목표입니다. 여기서 "멸"은 한 순간 작은 문제가
해결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탐.진.치 삼독이 완전히 소멸
 된 상태를 말합니다.

 사성제의 네번째 항목인 도제(道諦)는 괴로움을 소멸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이빈다. 그 구체적인 방법으로 팔정도(八正道)가 있습니
 다. 이 여덟 가지를 실천함으로써 괴로움을 제거하게 되는 것입니다.
 팔정도는 정견(正見), 정사(正思), 정어(正語), 정업(正業), 정명
 (정명), 정정진(正精進), 정념(正念), 정정(正定)의 여덟 가지입니다.

 첫째, 정견은 바른 소견입니다. 존재의 실상을 바로 꿰뚫어 보는
것을 말합니다. 올바로 보는 것은 문제 해결의 출발점이 되기 때문
 에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둘째, 정사는 바른 생각입니다. 정견이 이루어지면 거기에서 바른
 사유를 할 수 있습니다.

 셋째, 정어는 바른 언어입니다. 올바른 말은 삼업 중에서 구업(口
 業)을 짓는 것과 연관된 중요한 항목입니다.

 넷째, 정업은 바른 행위입니다. 여기서 바른 행위는 신.구.의 삼
 업을 통한 바른 업을 짓는 것입니다.

 다섯째, 정명은 바른 생업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바른 수단을 말합니다.

 여섯째, 정정진은 바른 정진입니다. 바른 정진은 곧 바른 수행을
말합니다. 우리가 기도를 하거나 참선을 하더라도 바르게 행할 때
얻는 소득이 큰 것입니다. 그래서 한 가지를 하더라도 올바른 방법
 으로 행하는 것은 상당히 중요한 것입니다.

 일곱째, 정념은 바른 기억입니다. 앞에서 나온 정사와는 성격이
좀 다릅니다. 여기서 정념은 부처님 말씀을 바르게 기억하여 전하
 는 것을 말합니다. 진리의 가르침을 바르게 기억하여 전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여덟째, 정정은 바른 명상입니다. 정정은 올바른 삼매를 말합니다
 앞의 일곱 가지가 실천에 옮겨질 때 이루어지는 최상의 단계입니다
 이상의 팔정도는 이 세상에 널려 있는 많고 많은 고통들을 소멸하
 는데 있어서 가장 올바른 길입니다. 팔정도를 실천 수행함으로써
괴로움을 근본적으로 제거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반야심경>에서는 사성제를 "무"라고 했습니다. 왜냐하면
사성제의 근본을 따져서 분석해 보면 그 근원이 공이기 때문에 "무
 고집멸도"인 것입니다. 사성제의 가르침이 아무리 좋은 것이라 하
 더라도 그 본질은 공이기게 "무"인 것입니다. 여기서도 결국 존재
 의 실상을 바로 보라는 것을 가르치고 있습니다.

 "오온개공"이므로 고도 없는 것입니다. 자기 자신이 있다고 하는
데서 고가 생기는 것이지 자기 자신이 없다고 하면 고는 없는 것입
 니다. "오온개공 도일체고액", 즉 일체의 모든 고통을 모두 건너가
 버렸기 때문에 "무고집멸도"입니다.

 여기서는 사성제를 있는 것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한 차원을 달리
 해서 그것 또한 텅 빈 것으로 보는 것입니다. 결국 사성제에조차
매달리지 말라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는 "고집멸도"의 사성제를 수없이 이야기 했습니다. 그
 러나 <반야심경>에서는 한 순간에 "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것은 곧 차원을 달리한 경지입니다. 이런 경지를 뛰어 넘을 때 공
 부의 진척이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달을 보더라도 어릴 때 보는 것과 청년 시절에 보는 것과
노년이 되었을 때 보는 것이 다르듯이 같은 대상이지만 차원을 달
 리한 견해가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존재의 실상이 공이기 때문
 입니다.

 사성제의 견해도 서론에서 언급한 유와 무와 성(性)의 입장에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유의 입장은 그대로 "고집멸도"가 있다는
견해입니다. 무의 입장은 "무고집멸도"가 됩니다. 또한 성의 차원
 에서는 고성제, 집성제, 멸성제, 도성제가 됩니다. 다시 말해서 "
 고" 그대로가 성스러운 진리라는 견해입니다.

 <반야심경>에서 가르치고 있는 공의 이치는 부정을 넘은 부정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부정의 부정은 다시 강한 긍정이 됩니다. <
 반야심경>의 핵심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무"를 통한 강한 긍정
 을 읽을 수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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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에게는 절제와

엄격함과

 


타인에게는 관용과

친절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