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5] `근원`과 나 - 그리고 진동! (다차원 우주)
(1) 클레오파트라와 나폴레옹!
대다수 사람들은 이 생이 처음이자 마지막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점점 더 많은 수의 사람들은 현생(지구에서의 삶)전의 삶을 기억하고 말하기 시작 합니다. 현재의 삶 이전, 이미 오래전에 이 지구의 삶에 참여 했었고, 그리고 지구에서 떠났다가 현재의 자리로 다시 왔다고 말합니다. 그렇게 현재의 삶 이전에 이미 지구에 태어 났다가 다시 이 지구에 태어남을 '윤회'라고 부릅니다. 기독교적인 시각에서는 참으로 '터무니 없는' 소리입니다. 과학적인 시각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그럼에도 많은 수의 사람들은 점점 '다시 태어남'에 대한 공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시 태어남'에 대한 공감 중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은 전생에서 '클레오파트라'였다고 말합니다. 얼마의 사람들은 자신이 전생에 '나폴레옹'이었었다고 말합니다. 어떻게 여러 사람들이 한 인물을 경험할 수 있을까요? 그리고 우리의 생은 수레바퀴처럼 그렇게 계속해서 돌아가는 걸까요?
(2) 하나님의 아들들!
성서엔, 인간 역사 초기에 하늘의 신(神)들이 이 땅의 여자들에게 반해서 그 여성들과 결혼해 자식을 생산하고, 그 자식들은 지구상의 '초인'으로 존재 했었다고 말합니다. 성서 창세기 필자는 매우 사실적으로 그 사건을 기록했고, 나중에 모세라는 사람에 의해 하나의 책으로 만들어진 '창세기(창조의 역사)'에 역사로서 기록돼 있습니다.
왜 신성한 존재들인 '하나님의 아들들'이 육체를 입은 이 땅의 여인들을 사랑했던 것일까요? 성서적 관점을 빌리자면, 절대적으로 격(格)이 낮은 인간들이 아무리 아름답다 해도, 인간보다 더욱 상위의 영적 존재들이 '아름답다'고 느껴야만 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하늘의 영적 존재들이 아름답다고 느꼈다면, 그것은 삼차원의 미적 기준에서 거의 완전한 아름다움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해도 삼차원의 시공을 초월하는 존재들(하나님의 아들들)이 인간 여인들에게 마음이 끌렸다는 것은 우리들이 모르는 다른 무언가가 있었다는 것을 증명합니다. 그들이 하늘의 영적인 신분을 내팽개치면서 까지 지구상 여인을 사랑해야만 할 이유가 있을까요?
(3) 인간을 벌주려고 감시하는 신은 없다!
요즘 타(他) 차원에서 온 마스터들에 의해 전달된 내용들에 의하면, 우주엔 인간을 벌주려고 감시하는 신이나 하나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그들은 나아가서 말하길, 인간들 자신이 신성을 소유한 신들로서 인간의 집단적인 의식에 의해 만물은 창조될 뿐이라고 합니다. 과거에 인간들에게 나타난 신(하나님)들은 인간보다 진보한 타차원의 존재들이라고 합니다. 도대체 신들이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의 삶이란게 무엇이란 말입니까! 그리고, 인간 자아 깊숙한 곳에 또아리를 튼 그 어마어마한 존재감은 도대체 무엇 일까요!
(4) 영매에 의해 나타나는 신들!
과학이 진보한 오늘날에도 과학적인 설명이 안되는 현상 중 하나인 '신들림'은, 인간 무의식 깊숙한 곳으로부터 나타나는 자연적인 현상으로 해석 하기엔 무리가 따릅니다. 작두 위에서 춤추는 '무당'의 행위를 우리가 모르는 초자연의 현상으로 해석해야 하나요? 그것은 삼차원의 존재를 능가하는 신적인 존재와 틀림없이 관계가 있습니다.
인간의 '다시 태어남(윤회)'은, 성서적인 관점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개념입니다.
신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대적 마스터들의 얘기로는, 무당의 '신들린' 행위를 설명할 방법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자신들이 받아들인 개념만으로 모든것을 설명하려고 하는것이 우리들입니다. 무엇이 진실 일까요?
근원 - 다(多)차원 우주!
만물이 하나의 소재(에너지)로 이루어져 있고 그들은 서로 연결돼 있다면, 우리는 우주적인 진실을 공유하게 됩니다. 클레오파트라의 삶을 '나의 진정한 자아(참나)'는 알고 있고, 나폴레옹의 삶도 나의 자아는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사람의 생을 다수의 사람들이 기억하는 것이 하나도 이상할 것은 없게 됩니다. 다만, 우리는 그것을 모르고 있을 뿐입니다.
우주는 모두 '에너지'(여러가지 표현이 있어도 알기쉽게 표현)라는 단일 소재로 이루어져 있고, 하나의 근원에서 비롯된 것이라면, 위에서 모순처럼 보였던 모든것에 대해 설명이 가능해 집니다. 인간이 가진 영은 불멸입니다. 그것은 성서나 불경에 의해 공박되지 않습니다. 우리의 영이 불멸이라면 우리는 여러 모양으로 이 지구에 다시 태어날 수도 있습니다. (불교는 불변의 자아를 부정함)
우주가 단일 소재로 이루어져 있어도, 표면적인 진보에 의해 차원이 분리되면 상위 차원의 존재들은 하위 차원의 존재들에겐 신으로 받아들여 질 수 있습니다. 현대적 마스터들이 말하는 '신이 없다'는 말의 의미이기도 합니다. 신(또는 하나님-창세기에 등장하는 하나님의 아들들을 포함)이란, 분명히 인간보다 월등히 진보한 선(先) 문명(상위 차원)의 존재일 뿐입니다. 따라서 우리도 하나의 근원으로부터 나온 매우 뛰어난 지적 존재로서 신(神)이라 지칭된다 해서 이상할 것이 없습니다.
만물의 창조란 '우리들의 공유된 의식의 합'이 이루어 놓은 결과물이라는 것을 이해해야 합니다. 한국이 아무리 발전해서 서양의 문화를 받아 들여도 우리들이 만들어 놓은 것들은 오로지 한국적인 것들 뿐입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들의 모든 의식이 서양화 되지 않은 상태에서의 창조물들은 결국 우리들의 의식 수준에서만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예를들면, 우리나라의 현대적인 건축물들은 모두 서양식 기법을 받아들여 지은 것입니다. 그럼에도 우리나라 도시들 사진을 보면 우리는 금새 한국의 도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만들어 놓은 도시란, 결국 우리들 한국인 의식의 총합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우주는 다차원(多次元)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상위 차원의 존재들은 하위 차원의 존재들에겐 신(또는 하나님)이 될 수 있습니다. 무당을 통한 '신들림'도 상위 차원의 존재들에 의한 '연출'일 수도 있고, 또는 이 삼차원을 벗어난 인간 영이 무당의 몸을 빌어서 대화를 시도하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인간 과학에서도 이미 오래 전부터 전파를 활용한 라디오를 통해 소리를 재생해 내고 있고, TV를 통해 영상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현대에 와서 그것은 매우 초보적인 기술에 불과한 것입니다.
하물며 우주라는 공간에서의 채널링이나 텔레파시, 영상 전달은 별로 새삼스러운 현상이 아닙니다. 인간들만이 우주에 대해 '원시적이고 물질적인 공간'으로만 인식하고 있을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의 진실 속에서, 자신이 받아들인 관념에 의해 우주와 인간에 대한 독립된 시각을 소유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느 종교를 믿느냐에 의해 우주만물과 인간을 바라보는 시각은 천차만별로 구분됩니다.
따라서 새롭게 마주치는 사상이나 이념, 관념적 사고들에 대해선 좀더 자유로운 시각을 유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주에 진실(진리)은 오로지 하나일 뿐입니다. 그럼에도 이 지구상에는 너무나 명확하고 획일화된 사상이나 이념 관념적 얘기들로 넘쳐나고, 그로인한 대립각이 실로 날카롭습니다.
우리가 각자 겪는 모든 것은, 결국 하나의 근원으로서 다양한 체험을 갖는 것이고, 내가 아닌 다른 사람의 체험은 바로 '나 자신의 또 다른 체험'이라는 자각을 얻으면 모든 사물에 대한 바라봄에 자비심과 사랑이 나타나겠지요. 사랑이란 개념은 '오묘하고 알 수 없는' 수수께끼가 아닌 자연스러운 하나의 현상으로 다가올 수 있습니다.
(아마 표현이 난해해서 이해하기가 어려웠을 겁니다. 알기쉽게 설명하는 것이 쉽지는 않군요.)
http://blog.chosun.com/jsl001/38658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