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슬 (새벽이슬, 이슬의꿈,이슬과길)
2011. 4. 1. 13:04
2010.07.14. 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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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소리를 듣고 있는가
봄이 오니 한겨울 얼어붙었던 땅이 녹고
그러면서 봄나물이며 봄꽃들이
얼마나 신이 나 있는지 모른다.
나도 처음엔 수필가들이 얘기하는 눈 녹는 소리며
바람 스치는 소리, 낙엽 떨어지는 소리가
서걱이며 온 산을 놀라게 한다는 그런 표현들을
그저 시적인 표현 정도로만 여겼다. 그런데 그동안
우리가 귀를 닫아 놓고 살아서 그렇지
가만히 귀 기울여 보면 정말 그 소리가
성성한 깨우침으로 귓전을 맑게 스치운다.
조용한 가을
낙엽이 떨어지면 뒷산 전체가 서걱이고,
산 속 나무 그늘에 덥석 누워있다 보면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사람들 지나가는
소리만큼이나 선명하게 들리고,
초봄의 산사에는 눈 녹는 소리가
꿈틀거리 듯 세속에 찌든 귀를 맑게 씻어준다.
이러한 자연의 소리는 아주 작은 것이라
사소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그건 결코
작은 소리에서 그치는 게 아니다.
그 소리를 듣는다는 것은 우리가 그런 작은 것도
느낄 수 있을 만큼 깨어있다는 말이기도 하고,
그만큼 내 마음이 맑게
비워져 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우리가 자연의 맑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이유는
내 안에 복잡한 소음이 너무 많기 때문이고,
해야 할 일들로 마음이 꽉 차 있기 때문이며,
또 머리 속은
정신없는 일들로 가득 차 있기 때문이다.
내 안이 맑게 비어 있어야
비로소 이 법계의 작지만 우주를 울리는
이 진리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것이다.
들어야 할 것을 듣지 못하고
듣지 말아야 할 것들만 듣고 사는 우리이고,
보아야 할 것은 보지 못하고
보지 말아야 할 것들만 보고 사는 우리이며,
먹어야 할 것은 먹지 않고
먹지 말아야 할 것들만 먹고사는 우리들이다.
그러니 우리의 육근六根인들
어디 좀처럼 온전할 수 있겠는가.
여섯 가지 감각기관을 잘 다스려야
몸도 마음도 경쾌하게 추스릴 수 있다.
들리지 않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도 볼 수 있어야 한다.
육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대상인 육경六境에
집착하지 않고 그것을 뛰어넘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작고 소박한 데 귀 기울일 수 있어야 하고,
자연이 가져다주는
소리 없는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랬을 때 고요하게 앉으면 내 안에서 울려나오는
쩌렁쩌렁한 속 뜰의 메아리를 들을 수도 있고,
이 우주의 작은 한 켠에서도 전 법계의 소리 없는
거대한 울림을 들을 수 있는 것이다.
가만히 앉아 마음을 맑게 비우고,
속 뜰의 소리며
대자연이 전해주는 맑고 밝은 소식을 들어보자. 終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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