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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알`을 잃으면 커질 수 없다

이슬 (새벽이슬, 이슬의꿈,이슬과길) 2011. 3. 30. 13:28

'알'을 잃으면 커질 수 없다

  유라시아 대륙의 드넓은 초원과 거친 사막지대를 중심으로 특별한 지역적
경계조차 없이 살아가던 기마종족들이 청동기문화(한반도 일대에서 발굴된
유물을 근거로 서기전 10세기부터 청동기시대가 되었다는 주장은 교통혁명의
위력을 무시한 매우 어리석은 견해이다)의 형성과 함께 더욱 활발한
내부경쟁을 벌이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종족들 사이의 계통적 분화가
이루어졌다. 앞에서 살펴본 황제계와 치우계의 전쟁은 그런 분화의
상징이었으며, 그 이후 아시아 기마종족은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지게 되었다.
  이 두 갈래 속에서도 다양한 작은 갈래들이 존재하고 있었고, 그들도 꾸준히
분화되어갔다. 옛 시대를 서술하고 있는 기록에서 종종 보이는 다양한 종족의
명칭도 그런 분화를 상징한다. 그러나 두 갈래로 나누어 진 후에도 기마종족들
사이에는 차이점보다 공통점이 더 많이 남아 있었으며, 문명권이 완전히
분리되었다고 보기는 어려웠다.
  치우 이후 4백여 년이 채 지나지 못한 단군 왕검의 시대도 문명권의 분화가
초보적으로 이루어진 단계에 지나지 않았다. 그러나 발굴된 유물을 관찰해보면
단군계는 기마종족의 주류로서 황하의 중상류 유역에 묶여버린 중국계보다
여전히 발전된 문화를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도 중국계의 역사와 달리 우리들의 역사는 거의 사라져버렸다. 중국이
역사를 자랑할 때 우리는 겨우 신화를 들먹거려야 했고, 중국이 호화로운
문화적 성과를 내세울 때 우리는 경 샤머니즘과 토테미즘을 읊조려야 하는
처지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렇게 된 데는 외부종족인 한족이나 경쟁종족인 일본인의 탓도 적지 않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까닭은 우리의 조상들과 우리 자신에게 있다. 우리는
스스로의 역사를 제대로 누릴 줄 몰랐던 것이다. 중국이 자신의 역사를
자랑스럽게 여길 때, 우리는 자신의 역사를 숨겨왔던 것이다. 중국이 우리
역사를 짓밟고 왜곡시킬 때, 우리는 중국 역사를 우리 역사인 양 앵무새 짓을
하면서 겨레의 영웅들을 무식한 원시 괴물로 만들었던 탓이다. 그래서 치우는
자기 후손들에 의해 액막이 귀신 노릇이나 도맡았고, 왕검은 '전설의 고향'에
등장하는 단골배우 정도로 잊혀져갔던 것이다. 자신의 후손들이 '요순시절'이나
들먹이며 자신을 야만인 대접할 때, 그 역사가 어찌 온전한 것이랴! 탄생기와
성장기가 없는 생명체가 어디 있으며, 배꼽 없는 역사를 가진 겨레가 어찌
제대로 커갈 수 있단 말인가!
  그 결과 우리는 겨레 역사의  '알'(모든 사물의 원초적 뿌리)을 키워내지
못한 채 끊임없이 작아져왔다. 그것은 뿌리를 잃어버린 겨레의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역사적 뿌리와 문화적 알을 상실하면 겨레의 힘도 그만큼
줄어들고, 마침내 나라땅마저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우리는 잃어버린
겨레의 초기 역사가 바로 오늘날의 작은 한반도를 상징하는 첫 출발점이라고
믿는다.
  *우리는 보통 한울님 또는 하느님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데, 그것은 하늘과
땅의 합성어이다. 우리말에서 원래 남성은 임(님)이라 했으며, 여성은 뉘(누이,
누리, 눌)라고 했다. 예컨대 오늘날 우리가 님이라 하는 말은 남성을 가리키며,
누이라고 하는 말은 여성을 가리킨다. 그런 구분마저 불분명해진 것은
오늘날의 형편이다. 우리 조상들에게서 하늘은 남성의 상징이고 땅은 여성의
상징이었다. 즉 하늘은 큰 남성이고 땅은 큰 여성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하늘은 한임 또는 한님이라 했으며, 땅은 한눌(한뉘, 한누리)이라 했다. 우주를
가리킬 때에는 이 둘을 합쳐서 한눌님이라 불렀고, 남성적 하늘을 가리킬 때는
한님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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