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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단군 조선외...실증 이야기...송호수 박사 글

이슬 (새벽이슬, 이슬의꿈,이슬과길) 2011. 3. 30. 13:11

 

몇년 전에 일본에 와서 발표한

소련의 여류 민족학자 R.S.M 자리가시노바 씨는

"한동 〈 구석기 시대에 인류가 살았고

신석기 시대 초에 이미 독자적인 고도의 문화를 가지고 있었 다" 고 했습니다.

 

 

신석기 시대 초는 지금으로부터 약 1만 ~ 1만 2천 년 전입니다.

 

그러므로 이 때 이미

우리 동이족들은 주변 국가들이 따라오지 못하는

수준 높은 독자적인 문화를 가 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우리와 적대 관계에 있는 공산국가의 학자가 발표했다는 말입니다.
 

 

또 하나 있죠.

역시 공산국가인 중국의 유명한

고고학자 당란이, 1977.7. 14 자 중공 '광명일 보' 를 통해 발표한 내용을 보면

"산동 반도 지역에서 남한 넓이 만한 광대한 지역에 이르 는

대문구 문명권 (大汶口文明圈) 을 발견했는데,

이곳을 발굴하니까 문자가 나오고

그 곳을 통치한 소호씨 (少昊氏) 란 통치자 이름까지 나왔으며,

이것을 방사선 탄소 측정을 해 보니 까

지금으로부터 5785 년 전 것" 이라고 합니다.

 

 

5785 년 전이라고 하면 단군 건국보다 약 1500 년 전의 일입니다.

그 당시 이미 산동 반도에는 문자를 사용한 고도의 문명 국가가 있 었는데,

그 통치자인 소호금천씨 (少昊金天氏) 가 동이족이라는 사실이

중국 고전에 기록되 어 있습니다.
 

 

 

'고사변'(古史辯)만 보더라도,

이 책은 우리가 쓴 책이 아니고 중국에서 나온 책입니다.

백 화문으로 되어 있는데 이것을 보면

"소호씨는 동이계야 (東夷系也), 동이지인 (東夷之人) 이 라" 고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태호 복희씨 (太호伏犧氏), 여와씨 (女蝸氏), 소호금천씨가

전 부 동이족이라는 것을, 중국 사람 자기네 손에 의해 밝힌 겁니다.

 


또 며칠 전에 조선일보에 한번 나온 적이 있죠.

요령성에서 5 천년 전의 여신묘가 발굴됐는데 이 묘는 무덤이 아니라 사당입니다.

그리고 궁터도 발굴했다는데

이것들은 앞서 말한 당란이 발표한 유적보다 700 년이나 더 이후의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이러한 여러 가지 사실을 놓고 볼 때, '삼성기'의 기록이 객관성이 있고

신빙성이 있다는 것이 고고학적으로 입증되었다면,

더 이상 무슨 반 증이 필요하겠습니까?
 

 

 

소호가 다스린 나라의 서울은 요동 반도에 있고, 산동 반도까지

다시 말해서 발해만 안쪽의 그 광활한 지역을

단군 이전에 벌써 통치하였다는 기록도 있는데,

5 천년 전의 거대한 궁터 가 발굴되었다면

이는 부족 시대 미개 사회에서는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죠.

강력한 정치 세 력권이 존재하지 않았다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까지 중국 역사를 말하는 사람 들이

주(周)나라 이전은 다 신화 시대로 몰아붙였지만

은허에서 갑골문이 발굴된 이래,

또 지금까지의 고고학적 발굴 성과를 볼 때

요(堯), 순(舜), 하(夏), 은(殷) 등의 역사를 인정하 지 않을 수 없고,

신농씨(神農氏), 황제(黃帝)를

신화적 인물에서 역사적 인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될 입장에 놓여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런 사실들은 이미

'시전'(詩傳)' 서전'(書傳) '맹자'(孟子)를 보면 다 나와 있습 니다.

그 가운데 정문으로 적혀 있습니다.

때문에 우리가 문헌을 볼 때에는 상당히 조심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식자우환이라고, 조금 안다는 학자들이 그 시대의 변천과 상황에 따라

그 리고 자신의 이해 관계에 따라,

엄연한 역사적인 사실을 신화니 비과학적이니 하면서 호도 한다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또 한가지 짚고 넘어갈 문제로 청동기 시대에 관한 것이 있습니다.

지금 고고학자들이 역사 를 보는 시야는

걸핏하면 청동기를 가지고 자(尺)질을 하는데,

즉 청동기 개시 년도에 따라 한 국가의 역사 시대가 결정된다는 얘기인데,

현재 사학계에서는 우리 나라 청동기 시대의 상한을 3 천년밖에 안보고 있죠.

그러니까 3 천년 이전에는 국가라는 게 있을 수가 없다는 주장입니다.

 

 


왜냐하면 한강 이남에서 우리 학자들이 발굴해 낸 유물들이

3 천년 이상 소급 을 못하니까 그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렇다면 단군 조선의 근거지는 도대체 어딥니까? 백 두산 아래 아사달입니다.

 


아사달은 그럼 어디냐? 바로 지금의 하얼빈인데,

그 지역을 발굴하 고 있는

북한의 학자나 소련 학자들이 발표하는 내용을 한번 들어봅시다.
 

 

 

지난 78 년 8.14 자 북한 '중앙통신'이 밝힌 바에 따르면

"우리 조선족이 청동기를 사용한 것은 서기전 2 천 년경

그러니까 지금으로부터 4 천 년 전이다.

 


그때 농가의 유적도 발굴했 고 농기구와 오곡 씨앗까지 발굴했다." 고 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소련 학계는, 세계에서 가 장 활발히 한국학을 연구하고 있는데,

거기에서 발간한 유 엠 푸진이 쓴 '고조선' 이란 책을 보면

 "조선족은 4 천년 전부터 청동기를 사용했다.

단군왕검이 있던 유적지도 발굴했고

단 군 조선 시대 중앙 행정기관의 유적지도 발굴했다" 고 했습니다.
 

 


이렇듯 국내의 여러 문헌뿐만 아니라

국외의 학자들이 연구하고 발굴해서 우리의 역사 상한 을,

그리고 단군 조선의 건국 사실을 고고학적으로 입증해 주는데도,

우리가 여기 앉아서 휴 전선 이북을 못 가본다고 해서,

가서 발굴을 못해 보았다고 해서,

우리의 청동기가 3 천년 이상 소급할 수 없다고 우기는 것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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