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크랩] 1.*단지파* 기독교의 성경....그리고 한사상...선가의 공통점???(설마??} 1
광야에서의 단지파 - 조희성 계파의 글이나 제대로 베낀 부분이 확실함
우리의 조상 단지파는 애급에서 40년간 살았다. 바로왕의 학대를 참을 수 없었던 (이스라엘 민족은 여호와께 호소하며 구원을 기다릴 때 모세를 세우 출애급하는 민족의 대이동이 시작되었다.
나일강변 라암셋 지방에서 출발할 때 가나안 땅으로 직행하려면 북쪽으로 가는 거리도 가까워 많은 인구가 움직인다고 하여도 5일간(150㎞)거리도 안 되는 가까운 곳인데도 그 길을 택하지 않고 반대방향인 남쪽 홍해지역으로 내려가 홍해를 건너 시나이반도 시내산으로 인도한 것은 하나님께서 전쟁을 모르는 이스라엘 백성이 전쟁이 나면 애급으로 다시 도망갈 염려가 있어 일부러 싸움을 잘하는 블레셋 지역을 피하려고 직행 길로 못하게 하신 것이다. 성경 지도를 보면 직행 길은 가나안 블레셋 족속이 살고 있는 블레셋으로 가는 길이다.
라암셋에서 시내산까지의 거리는 가나안 블레셋 지역과 거리가 비슷하다. 애급에서 직행하면 4백리도 안 되는 거리가 시내산으로 남행한 고로 가나안에로의 거리는 7~8백리로 배나 멀어졌다.
시내산에서 율법을 받은 후 모세는 가나안 정복을 위하여 군사를 조직하였다. 인구조사를 하는 가운데 이스라엘 12지파 중 축복받은 지파가 징계 받은 지파보다 인구가 더 많고 힘이 더 강한 것으로 특징으로 나타났다.
군인으로 출전할 수 있는 인원수는 평균 한 지파에 5만명 선인데 첫째는 「유다지파가 제일 많아 74,600명」이고 둘째는 「요셉지파(에브라임, 므낫세 2지파가 72,000명」이고 세 번째는 「단지파로써 62,700명」이다.
군사를 편성할 때 모세는 조직 체계가 질서 있고 짜임새가 있도록 엄정한 계급을 세워 명령 하달을 하여 일사불란한 행동을 취하게 하였다.
60만 대군을 동서남북 4군으로 분류하여 1군을 15만 명 정도로 조직하였다. 한 지파 군인 수가 5만명 정도이니 3개 지파 병력이 통합하여 군을 형성하였다.
「1군 사령관은 유다지파 인물로서 동군 선봉부대」가 되고「2군 사령관은 루우벤 지파 인물로 남군」이 되고 「3군 사령부는 요셉지파에 소속되어 서군」이 되고 「4군 사령부는 단지파인데 북군」이 되어 진군할 때 맨 나중에 전지하였다.
행군할 때 동군을 선두로 남군, 서군, 북군 순으로 전진하여 나갔다. 각 군마다 특색있는 군기를 들고 행군했기 때문에 일반인들로 자기소속 군기를 바라보면서 행진하였다.
길도 없는 사막지대 광야를 행군할 때, 낮에는 구름이 인도하고 밤에는 불기둥이 인도하였다고 하니 상상만 하여도 장엄하다.
노인, 유아, 미성년까지 합하면 무려 250만 규모였다고 하니 하루분의 식량도 무인지대 사막에서는 구할 수 없는 고로 날마다 하늘에서 나리는 만나에만 의지해 살아간 것이다.
군사를 조직할 때 3지파를 통합하였는데 되도록 동복 동생지파 로 조직하였다. 단지파는 친동생 납달리와 실바의 아들 아셀지파로 구성하였으니 신분상으로 보면 종의 자손들이다.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요단 강 동편 모압 평지까지 40년간 행군하면서 포진한 횟수가 50회 정도니 1년에 1회 이상 대이동을 한 셈이다.
동군과 북군의 거리는 어림잡아 생각하여도 10~20리의 긴 행렬로서, 수십 종대로 행군하다가 주둔할 때는 동서남북 4각형으로 포진하였다.
법궤가 있는 성막과 레위지파는 12지파가 포진한 4각형 중앙에 있게 하여 12지파가 사방에서 성소를 바라보면서 경배하게 하였다.
군사 조직에서 하나님의 경륜을 알 수 있도록 하고자 함인데 선봉부대인 유다군은 매사에 선봉으로 12지파를 대표하는 활동을 하였다. 광야에서 아말렉과 싸우고 바산과 아모리와 전쟁할 때도 유다지파가 활약하고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을 정복할 때도 유다지파가 일선에서 싸웠다.
땅을 분배받을 때도 가나안의 심장부 예루살렘을 차지하였다. 그 후 유다지파에게 홀의 권세가 있어 다스리는 권세를 오늘날까지 보유하고 있는 것이다.
단지파는 유다지파에 버금가는 강력한 지파로서 북군의 3지파를 광야에서 통솔하였으나 불행하게도 가나안 원주민 7개 민족 가운데 제일 강한 블레셋 족속이 거주하는 지역을 분배받으니 호랑이 굴에 들어간 격이 되었다.
출애급할 때부터 블레셋 민족이 두려워 직행길을 두려워 직행길을 피하고 광야로 우회하였는데 가나안에 들어와 결국은 블레셋과 대결하는 운명은 단지파에게 돌아갔다. 단지파는 2백년간의 장기전으로 인해, 지칠대로 지친 나머지 불가불 가나안을 떠나게 되었다. 만일 단지파가 다른 지파와 같이 분배받은 지역에서 원주민을 굴복시켜 정착하였다면 그 곳을 절대로 떠날 수 없고 떠날 마음을 가질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이면에서 하나님께서 섭리하신 것임을 알아야 한다.
인간들이 생각할 때는 유다지파가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하늘과 땅의 권세를 받은 것 같지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마귀와 싸워 이기시기 위한 전략이니, 마귀로 하여금 유다 지파를 표적으로 삼게 만들었던 것이다.
12지파 가운데 유다지파 출신 다윗이 유다왕국을 개국한 이후 3천 년간 유다가 이스라엘을 대표하여 활동한 관계로 오늘날 세계인들은 이스라엘 사람을 유태인으로, 그들의 종교를 부르게 되었다.
유태인들의 종교이념은 이스라엘 땅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우고 솔로몬시대의 영화를 되찾고 모세와 여러 선지가 예언한 메시아를 맞이하여 지상천국, 유토피아를 건설한다는 것이나 이는 실현될 수 없는 꿈이다.
또한 유다지파 출신 예수가, 미세의 유대인 왕 예수를 믿는 성도들과 영화를 누린다는 기독교 신앙도 무위로 돌아갈 것이니 유다는 그림자요 모형이 될 뿐이고 본체, 원형이 아니다.
하나님의 전략은 오묘하며 깊이 숨긴 바 되어 세상 사람이 볼 때 단지파는 실패자처럼 보이게끔 만들어 가나안을 떠나게 하여 이스라엘 족보에도 없게 한 것이다.
신약 계시록 7장에 12지파를 열거할 때도 단지파가 없는 것은 사사시대 말엽부터 단지파는 사라진 것으로 인정한 고로 계시록 기록한 기자가 단지파는 기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단에 대한 예언 가운데 단을 독사와 사자로 표현한 것은 숨어 있다가 홀연히 나타나 적과 싸워 이길 것을 암시하고 것이다.
단에 대한 예언 가운데 단을 독사와 사자로 표현한 것은 숨어 있다가 홀연히 나타나 적과 싸워 이길 것을 암시한 것이다. 동방 한반도에 3천년간 정체를 숨기고 핏줄을 통해 힘을 키우신 단의 위력이 오늘에 나타나 바산에서 뛰어나오는 사자같이 온 세상을 호령하며 이 세상에서 왕으로 군림하는 예수까지 질그릇 부수듯 하고 있다.
광야에서 유다를 선봉부대로 세운 것은 마귀세상에서 유다가 통치할 것을 뜻한 것이고 단지파를 맨 나중 후비군으로 세운 것은 말세에 나타나 마귀 세상을 정복하고 실로(구세주) 시대의 영원한 낙원을 회복할 것을 말한 것이다.
문 답 식 문 제
문 : 가나안 땅을 정복하기 위하여 조직한 4군의 각 중심지피는 어느 지파인가?
또 각각 어느 방향을 담당했나?
답 : * 제 1 군 유다지파 (동쪽담당)
* 제 3 군 루우벤지파 (남쪽담당)
* 제 3 군 요셉지파 (서쪽담당)
* 제 4 군 단지파 (북쪽담당)
문 : 단지파의 친동생의 이름은 무엇인가?
답 : 납달리입니다.
삼손 사건으로 인하여 큰 피해를 입은 블레셋은 단자손에 대한 복수심으로 불타 날이 갈수록 압박을 가해, 단지파는 더 이상 견딜 수 없게 된 나머지, 날마다 모여앉아 대책을 의논한 끝에 레바논 동쪽 라이스 지방, ‘단’이라는 땅으로 떠날 것을 결심하고 거주할 곳을 알아보려고 정탐꾼 5명을 선발하여 파견하였다.
그 당시 가나안 지역은 인구가 많아서 정착할 곳이 없고 블레셋의 압력으로 다른 지파 형제들 틈에 끼여서 더부살이를 하기가 싫었던 것이다.
긴 세월 블레셋 민족과 전쟁하면서 연단을 받은 그들은 자립정신과 개척 정신이 강하여 남에게 의지하면서 살려고 하지 않았다.
가나안 지역에는 살만한 곳이 없는 고로 가나안을 떠나서 북쪽으로 답사를 하여 발견한 곳이 요단강 최상류 레바논 산맥 동부지방, 지금의 시리아 군이 지키고 있는 베카 골란고원 지방이다. 그 곳은 토지도 비옥하고 사람들 많이 살지 않아서 최적지로 생각되어 정탐꾼의 안내를 받으면서 그 곳에 도착하여 살았다. 얼마 동안 그 곳에 살았으나 텃세를 부리는 원주민들의 핍박을 견디기 어려워 이락 나라를 거쳐 계속 동으로 이동하였다. 이란까지 위도 34도~35도 선으로 전진하다가 중앙아세아로 전진할 때는 지형상 천산산맥이 끝나는 45도 선까지 북상하여 산높이가 낮은 중국북부 알타이산맥에서 100~200년 동안 살데 되었다. 거기서 1세들은 죽고 2세들이 알타이 말을 배워 쓰게 되었던 것이다. 그곳에서도 원주민들이 텃세를 부리며 핍박을 하는 고로 알타이 산맥 부근에서 우리 단지파 민족 중 일부는 터키 쪽으로 돌아갔으며 또한 일부는 에스키모쪽으로, 일부 민족은 몽고에서 정착하여 살았다. 또한 대다수의 우리민족은 광활한 중국 북부를 거쳐 만주벌판으로 미지의 세계를 더듬어 나아갔다.
수백 명의 단출한 장정들과 가는 길이 아니고, 노약자와 유아들까지 합쳐 수만명이 움직이는 이동길이니 하루에 3~4십리 길을 가기도 힘들었던 것이다.
굶주리고 춥고 옷이 낡아 헐벗고 병자가 발생하고 말할 수 없는 고생을 하였으니, 생각하면 옛날 우리 조상들은 삶의 터전을 확보하기 위해 다른 부족과 맹렬히 싸우는 한편 자연의 재해까지를 극복해가며 불굴의 정신으로 그 모든 것을 참고 이겨냈던 것이다.
단자손은 가나안에서부터 목축업을 하는 유목민인 고로 날마다 이동하는 것이 생활 속에 젖어 있어 정착하여 농경생활하는 농민보다 이동생활에 익숙했다.
그들의 주식은 짐승의 고기와 젖이었으므로 농사를 짓지 않았다. 그리하여, 광활한 만주평야를 지나서 압록강을 건너 대동강변에 고조선을 설립하게 된 것은 지금으로부터 대략 3천년 전의 일이다.